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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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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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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유진옥의 묘(1878.6.26~1928.10.20)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520
거인 유진옥(居仁 柳震玉) 선생은 1878년(고종13년) 경남 김해(金海)에서 나셨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 등이 유림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세칭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라고 불리우는 이 거사는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 137명이 참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림의 항일운동이었다. 파리장서 요지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광무황제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 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유림은 김창숙(金昌淑)을 파리로 파견하고자 상해로 보냈으나, 직접 가지는 못하고 이 문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했으며,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경북 상주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1919년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피체되면서 발각되었다. 이로써 유진옥도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유진옥 선생은 당시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일제의 갖은 회유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독립의 기틀은 민족 교육에 있다는 신념으로, 김해 강학당인 춘산정(春山亭)에서 후진 교육에 헌신하시다가 1928년 별세하셨다. 남긴 저서는 「史?通巧:사?통교」 「文城世稿:문성세고」 「居仁遺稿:거인유고」 「寓思遺稿:우사유고」 등이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거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