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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를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48년 총선거, 제헌국회 구성, 정부수립 과정을 통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 였지만, 집권당 자유당의 부패가 만연해지고 장기집권을 위한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지속되자 김창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고난의 투쟁을 벌였다. 1951년 1.4후퇴로 부산으로 내려간 김창숙은 그해 봄 이승만 하야 경고문을 발표하여 40일간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김창숙은 이승만 정권의 실정과 독재를 비판하는 대통령 하야 경고문을 3번 이나 발표하였다. 1952년(74세)에도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시영·조병옥 등과 반독재호헌 구국선언문 발표 현장에서 정치깡패에게 폭행을 당하는 '국제구락부사건'으로 구금되었다. 이후 김창숙은 야권 단일화 운동, 국가보안법 개악 저지 투쟁 등 이승만 정권에 항쟁하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성균관대학교 총장 등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는 탄압을 받았다.
김창숙등이 부산 국제구락부에서 이승만의 장기집권 음모를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할때 침입한 괴한에게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김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