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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4년 5월 Column  명사 칼럼 ② 작은 소리 큰 울림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4년 5월 7일에 호찌민(胡志明) 국가주석이 이끈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 남)은 국방장관 보응우옌잡(武元甲)의 지휘 아래 남베트남을 사실상 식민통치한 프랑스군을 프랑스군의 마지막  거점으로 북부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에 있는 디엔비엔푸(奠邊府)를 함락했다. 이로써 베트남을 완전히 자 신의 식민지로 만든 1885년 이후 이러저러한 형태로 베트남 전체 또는 베트남 남부를 지배한 프랑스는 69년 만 에 물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민의 디엔비엔푸 함락이 불러일으킨 식민지해방전쟁  : 그 역사적 사변 70주년을 맞이해 언제나 국제정치 흐름을 정확히 읽으며  현명하게 대처해야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디엔비엔푸 함락의 국제정치적 의미 흔히 베트민(越盟)이라고 불린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디엔비엔푸 함락은 그저 베트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반도 전체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강대국들 사이의 문제였다. 그래서 함락 바로 그 다음 날인 1954년 5월 8일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전쟁의 당사국인 프랑스와 베트남민주공화국 그리고 라오스 · 캄보디아 · 미국 · 소련 · 영국 · 중화민국 · 베트남 국(남베트남) 등 9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회담이 시작되었다. 참가국들 사이에 이해충돌이 격화된 나머지 2개월 13일 뒤인 7월 20일에 이르러 우선 「베트남군사협정」과 그 부속문서가 프랑스군 대표와 북베트남군 대표 사이에 조인되었고, 7월 21일에 참가국 9개국 가운데 미국과 베트남국 (남베트남)이 서명하지 않은 채 「제네바회의 최종선언」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대략 북위 17도선 을 경계로 베트남의 남북분단을 공식화했다. 「제네바회의 최종선언」에 서명하지 않은 미국은 약 40일 뒤인 1954년 9월 8일에 필리핀 마닐 라에서 영국 · 프랑스 · 호주 · 뉴질랜드 · 필리핀 · 태국 · 파키스탄 등을 끌어들여 동남아집단방위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