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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암읍의 조극환·정학순·최민섭과 군서면의 최한오·박규상·조병식 등을 중심으로 4월 10일 영암읍 장날에 읍내와 구림리에서 동시에 만세시위를 벌이려는 계획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하면서 구림리의 간죽정(間竹亭)을 연락장소로 이용하였다. 4월 10일 아침 박규상은 비상나팔을 불어 주민들을 회사정(會社亭) 앞에 모은 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 날의 거사로 영암읍과 구림리의 주민과 학생 30여 명이 일경에 체포되었고 이들 중 20여 명이 5개월~2년의 옥고를 치렀다. 회사정은 1646년 구림대동계(鳩林大洞契)의 집회장소로 창건되었고, 이후 8년에 걸쳐 중건하였으나 6.25 때 소실되었다가 1985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