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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기념비
일제의 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으로써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독립운동의 열기는 화도읍에서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1907년 선교사에 의해 월산교회가 세워지면서 교회에서는 배인학당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교회의 지도자인 김필규 목사님과 이인하, 이택하 성도는 만세운동소식을 듣고 마을의 지도자 이달용, 이승보, 이재하, 이덕재, 이택주, 유인명, 홍순철, 윤태익씨 등과 3월 16일 교회에 모여 봉기할때와 방법을 결정하고 연락하던 중 발각되어 이재하, 이승보, 이택하씨 등이 일경에 검거되었다. 그날 밤 월산리, 답내리 주민 200여명이 고개넘어 마석우리 병참 앞에 몰려가 검거인사의 석방과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일경의 발포로 이달용 손복산 신영희 유상규 이교직 씨 등은 숨지고 이재혁 윤균 강덕녀 윤정석 원대현 씨 등은 중상을 입었다. 3월 19일 일경은 만세에 가담한 자를 체포하기 위하여 마석고개를 넘어왔는데 많은 주민은 피신을 하고 김필규 이승면 강선원 윤성준 남궁우용 김원석 권은, 이윤원 씨 등은 검거되어 옥고를 치루었고 김필규 목사님은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시고 옥에서 순국하셨다. 이 사건은 서울 근교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최초로 발생한 처참한 사건이었다. 이 나라 사랑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교우와 주민의 정성과 군청의 지원으로 여기에 기념비를 세운다.
1993년 3월 1일
월산교회 교우와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