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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우리나라 군대가 해산을 당하고 일제 치하로 들어가자 항일사상이 전국적으로 일게 되여 공께서도 이에 호응하여 서기 1919년 기미 3 월1일에 계획된 3.1만세운동에 참여 관내 동지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선봉이 되여 오포면사무소의 소재지인 고산리에서부터 광주군청 소재지까지 횃불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도중 삽시간에 천여명의 군중이 운집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군중들이 군청 소재지까지 이르렀으나 왜경의 무차별한 총질로 강제해산을 당하였고 그 후 공께서는 오포면 관내의 주동자로 왜경에게 체포되시여 온갖 고문을 당하시고도 1년간의 체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시고 출감하시었다. 출옥하신 후에도 애국적인 항일정신은 변함이 없으시며 지하 비밀운동을 암약하시다가 왜경에게 발각 재체포되여 고문만을 당하시고 다행히 석방은 되시였으나 역시 왜경의 감시는 더욱 심하여 자유로운 행동은 물론 훈학조차 못하게 되여 생계마져 막연하게 되자 망국의 한을 품고 애석하게도 춘추 46의 젊은 연세로 서기 1928년 5월 31일(음 4월 13일)에 자결하신 애국자이시다. 국가에서는 늦게나마 공의 애국정신을 인지하고 서기 1992년 3월1일 국가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추서받으셨으며 배 전주이씨 사이에 1남 4녀를 두시였다. 공의 비석을 수년 전에 건수하였으나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사실을 정석에 새겨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하여 자 호림이 삼가 개수하나이다.
서기 1993년 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