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page


218page

고 임도현 선생은 태평양 전쟁 발발 이전인 1931년 일본 다치카와 비행학교에서 동료 6명과 함께 비행기를 몰고 중국으로 탈출해 중국 공군 창설을 주도했고 항일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뤄 고문 후유증으로 지난 52년 사망했습니다. 출처 : 제주국제자유도시 방송 임씨의 조카 정범씨(56.세화중 교사)가 조성한 기념관 안에는 임씨가 일본 천황을 기만해 조종사가 된 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갔던 기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임씨는 중국에서 비행학교 창설요원으로도 활약했고 실제 일본과의 전투에서 총을 맞고 부상도 입었다. 또 1932년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참여했다는 임씨의 기록물도 소개되고 있다. 정범씨는 “백부가 중국 비행학교에서 조종사를 배출하고 전투에도 참여해 일본에게 큰 위협이었다. 1941년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제주로 압송돼 5년간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했다”며 “1943년께 조천에서 들고 일어난 항일공출부역징용 일체거부투쟁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정범씨는 2005년 임씨에 대한 국가독립유공자 신청을 보훈처에 냈지만 탈락했다. 이어 그는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판결자료와 중국 유주육군항공학교 장교단사진 등 백부의 항일투쟁을 입증하는 자료를 한층 보강해 2009년 독립유공자 선정을 재신청했지만 또 탈락했다. 정범씨는 “탈락이유는 괘씸죄였다”며 “첫 심사 때 위원들이 군대특성을 몰라 군인출신 심사위원도 초빙할 것을 요구했는데 다른 탈락자의 ‘보류’와 달리 ‘제외’를 시킨 점이 증거”라고 말했다. ‘제외’는 이적 행위자나 친일파에 적용되기 때문에 악의성이 엿보인다는 주장이다. 결국 부당한 독립유공자 심사과정에 실망을 넘어 분노한 정범씨는 백부의 독립유공자 인정은 합당한 명예를 인정받으려고 한 것뿐이었다며 더 이상 신청을 포기하고 백부의 전무후무한 항일투쟁 활약상은 반드시 후세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판단, 기념관을 조성했다. 출처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