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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나순례 공덕비(義人 羅順禮 功德碑)
참혹한 동족상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다른 용기와 담대함으로 무자비한 살육만행을 막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리고 마을을 구해낸 참 의인이 있었으니 그가 고 남순례 님이다.
나순례 님은 1924년 12월 1일 나주시 송월동 나주나씨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1943년 진주형씨 집안의 형두열과 혼인하였으며, 1950년 6.25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2남 4녀를 낳아 길렀고, 정숙하고 근면한 농가의 아낙으로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51호인 마을민요(도장리 밭노래)를 보존, 전승하는 일에도 앞장서다가 2001년 11월 26일 돌아갔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17일(음력 2월 10일) 새벽,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3대대 병력은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에 들이닥쳐 이곳 도포배미 논에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한 후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여 천인공노할 살육을 자행하였다.
논바닥은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명이 죽고 다치는 아비규환의 마당이 되었고, 자칫 마을주민 모두가 몰살당할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때 어린아이를 들쳐업은 한 젊은 여인이 대열에서 일어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언덕을 기어 올라가 지휘관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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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요 왜 우리를 다 죽이려 한단 말이요. 죄 없는 우리를 제발 살려주시오!"
회진댁 나순례 님이었다. 순간 침묵이 흐르고, 이윽고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들과 사람들 몇몇이 흐느끼기 사작하자 군인들도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살이 멈췄고, 마을주민들은 군인들에 의해 인근 도곡면으로 소개되었다가 얼마 후 돌아와 죽은 이들을 장사지낼 수 있었다.
떼죽음의 공포 앞에서 목숨을 건 한 아낙의 외침과 항변이 없었던들 도장마을은 해망산 위에 수백의 원혼이 한없이 떠들고, 마을 앞 냇물에는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이 해마다 뿌려지는 침묵과 원한의 골짜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에, 죽음을 무릅쓰고 학살자들을 저지하여 무고한 목숨들을 살리고 마을을 구해낸 임의 의로운 용기와 공덕을 영원히 기리고 잊지 앟기 위해, 도장리 학살 71주년을 맞아 온 마을사람들과 출향인사들, 그리고 둘재아들 염무를 비롯한 자녀들과, 큰손자 해원 등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이곳에 소박한 빗돌을 세운다.
2022년 7월 30일 김성인 삼가 짓다
고 나순례 님 공덕비 건립 추진위원회
위원장 김범순 부위원장 형선근 형광호 김성인 총무 김관순 이장 김태길 외 도장리 주민 일동 아들 염무 딸 정자 정순 정숙 유진 자부 양외순 손자녀 해원 동욱 은지 수환 수오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