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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에 대한 절개로 창씨개명에 항거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이 길어지자 식민정택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친일 행위에 앞장섰지만 충북 보은 산외면 신대리에 모여 살던 문화류씨 문평군파 종인은 가진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문화류씨는 1670년 정주 한말에 류온이라는 휼륭한 후학을 배출하기도 하였던 기품있는 가문으로, 천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성명을 일제식으로 개명하는 것은 선조에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여기고 후손에 씻지못할 누가 될 것을 염려하여 수많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