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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 구의사 사적비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략을 받을때마다 백의 출전의 의거로써 보국 충절을 다하였다. 임진왜란시 의병들의 활약과 한말 왜적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의 활동은 생명보다 절의를 중히 여기는 우리민족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말 호남지방에서 의거한 최익현, 임병찬, 이성용, 전해산, 이규홍등은 위국충절로 청사에 빛난 분들이거니와 여기 또한 이 고장에서 낳은 유문 구의사야 말로 그 충절이 극에 달하였다. 구의사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한 유중화(자는 치복), 유현석, 유영석, 유준석, 유태석, 유명석, 유연청, 유연풍, 유연봉등 구인이다. 이들은 고려말 문하시중을 지낸 유탁을 선계로 하고 조선조 임란에 호성공신인 유광의 후예로서 이 지방에 세거한 명문이다. 이들이 거의에 뜻을 두기는 고종32년 을미에 동종 의암 유인석 조선의병대장이 반포한 격문에 감동되고 광무9년 을사특약이 체결된 이듬해에 있는 최익현, 임병찬의 의병 출동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이 때는 유중화는 각처에서 봉기하는 의병들과 같이 구국의 일선에서 신명을 바칠것을 결심하고 인경에 거주하는 동지 유지명, 송태식(조카사위)등과 모의하여 앞의 친족 8인과 생질 이유종, 이태종등 수명과 더불어 순종 원년 정미가을에 의병을 조직하니 이 운동에 호응한 군세는 백여명에 달하였다. 한때는 이규홍의병단과 합세하기도 하고 혹은 각지의 의병단과 연합전선을 펴기도 하였지만 주체는 유중화등 구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일대의 의군단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비봉면 소농리 불당동에 무기제작소를 두고 창검및 탄환, 화승총을 사냥총으로 총포를 개조 보급하고 용담 진안과 멀리 진산, 금산, 연산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넓혀 1907년 2월 금마산성에 매복하였다가 헌병대를 습격 전멸시키었다. 1907년 11월 15일 고산군 가금리(현 화산면 화월리)에서 격전하여 왜병 29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8년 4월 10일 연산자촌에서 왜병 2명을 사살, 1908년 9월 3일 고산에서 왜병 십여명을 사살, 1908년 10월 은진 왕성골에서 왜병과 크게 접전하여 승리하였다. 한편 자체내의 비행을 숙청하고 친일파 일진회를 물리치기도 하였다. 군 자금은 자체의 조달과 뜻있는 지방의 부호 몇사람의 의연금으로 충당하였다. 구의사의 항일활동은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4년동안 실전이 계속 되었으며 국치이후 국내의 의병활동이 지식된 때에도 그들은 행적을 숨겨가면서 항일의 지하운동을 계속하여 기회를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일제는 이들의 잠재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경술 10월에 총책을 맡은 유중화를 체포하고 국치후 6년에 팔의사를 일시에 체포하였다. 이 때의 구형 죄목은 살인강도범이었다. 그러나 앞서 지방 부호들로부터 의연금을 받은 것을 항일운동자의 강도행위이며 내란죄에 해당하되 경술 합방조약에 따른 사면령이 적용됨을 파신하였다. 그래서 간교한 부일배와 결탁하여 터무니 없이 또다른 강도 행위를 날조하여 이에 얽어 씌었다. 앞서 금마 헌병대에 피체된 유중화는 무서운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혀를 깨물어 저들의 비행을 질책하고 즉석에서 총살을 당하는 영웅적인 순국을 하였다. 나머지 팡의사도 최저 10년에서 15년형을 받았다. 유현석은 탈옥하여 변 성명하고 은피하였다. 유태석은 복역중 옥사하고 그 외 의사들은 출옥후에 형독으로 수년을 넘기지 못하고 별세하였다. 구의사의 대부분이 가파신망하고 절손까지 되는 참상에 이르렀다. 또 유중화의 생질 이유종은 옥사하고 이태종은 출옥 귀가중에 돌아 갈곳이 없어 도중에 활복 자결하였다. 아! 이들 의사의 장함이여- 이들은 신분도 지위도 명예도 공훈돈 불원하였다. 오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위국 단성의 세운을 이행 뿐이었다. 여기 고흥유씨일문 구의사의 출현은 임란의사 고유봉 일문에서 구의사가 출현함과 같다. 이야말로 일 문중의 자랑이며 이 고장이 나라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청사에 빛나는 의거요 민족 도의의 사표며 호국의 성령이다. 이들이 10수년 투쟁을 계획하는 동안 이 운동에 관계되는 비밀문서는 모두 효실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장거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 등불처럼 비치고 있다. 이에 지방고노들의 증언을 듣고 당시 구의사와의 관계된 독립투사들의 행적을 더듬어 이를 엮어 비명에 부처 길이 공적을 기념하고자 하는 바 이다. 서기 198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