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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구(申錫九, 1875~1950)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미원면 금관리 출신이다. 호는 은재(殷哉)를 사용하였다. 1907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1919년 2월 중순경, 서울 수표교교회 목사로 재임 중 3.1운동의 계획을 전해 듣고 기독교측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2월 28일 손병희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모임에 참석하였고,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참가한 뒤 일제에 피체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종교 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광복 후 북한에서 공산당에 항거하다가 희생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