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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 의사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이 한중 연합 전선 무장 세력인 조선의용대를 구성하자 여군 격인 부녀복무단을 설치하여 단장을 맡았다.
1939년 2월 장시 성(江西省) 쿤륜산(昆崙山) 전투 중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입은 총상의 후유증과 관절염 등의 후유증을 앓았다.
1944년 5월 27일 충칭에서 병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34세였다.
유해는 해방 직후 1945년 12월 송환, 김원봉의 고향인 밀양의 송산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작품으로는 시 '개구리 소재'와 소설 '철야', 일본어로 쓴 수필집 '가을 아침' 등이 있다.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했고 남편 김원봉도 월북, 북한에서 장관급 각료를 역임했기 때문에 평가받지 못하였다.
공적에 비해서는 뒤늦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부산시 동래구 현, 동래고등학교 맞은편에 생가가 복원되고 부산 금정구 이곳 만남의 광장에 동상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