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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9월 중순 원용팔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 되자, 박정수 등과 재거사를 계획하고 각처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았다. 그는 격고문에서 일본이 한국의 국토를 침탈해 가고, 조세제도와 호적제도를 일본식으로 변개하며, 한국의 황실과 예속을 형해화시킨 사실 등을 들며 궐기를 촉구했다. 1905년 7-8월에 원용팔은 원주·영춘·영월·정선 등지를 무대로 의병항쟁을 전개했다가 9월 원주진위대와 일진회의 합동 작전에 의해 횡성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을 때에도‘동대문 밖에만 나가면 다시 군사를 일으킬 것이며, 호응하는 사람이 없으면 집안사람들과 같이 하고 집안사람들도 호응하지 않으면 나 혼자서 하겠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원용팔은 1906년 3월 7일 수감 중에 병사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격시켰다. 출처 : 국내항일독립운동 사적지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