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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안장 하였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함창김씨와 아들 셋이 있는데 택주 학주 옥주다. 당시의 의병은 민폐를 끼치는 일이 많았으나 장군은 부하를 엄중히 단속하여 인민을 보하한 까닭에 1909년 무주 군민이 장군의 송덕비를 세웠으니 장군은 실로 위대한 의병대장이었다.
1970년 2월 일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 신석호 지음 연안후인 이영달 씀
의병대장 문태서 기공비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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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 언급된 무주군에 1909년에 건립된 문태서장군 송덕비를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09년 3월 29일, 전북관찰사 이두황은 부하로 하여금 내부대신 박제순에게 긴급 보고를 올리라고 한 후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연방 씩씩거린다. 금산·남원 경찰서장이 보낸 보고서 내용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다. 무주군 안성면 죽장리와 일안면 갈마리에 '폭도수괴(暴徒首魁·의병장)' 문태서의 송덕비가 건립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 그것을 없애고, 그곳 사람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설립자를 조사했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이두황은 보고서에 있는 송덕비의 내용을 읽으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른다. "아니, 무신년이면 작년이잖아, 작년! 그리고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에 폭도수괴의 송덕비가 번듯이 서 있었다는데…. 수비대, 순사대, 변장대는 뭐했다는 거여? 그리고 그 많은 일진회원, 밀정은 다 청맹과니여?"
출처: 부산일보 이태룡의 의병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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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忠輔國 下濟萬民
진충보국 하제만민
爲國義兵大將 文泰瑞之碑
위국 의병대장 문태서지비
名振四海 難盡其德
명진사해 난진기덕
戊申 四月 日
무신 4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