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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비는 180×180×54cm의 좌대를 높이 두고 그 위에 비를 세운 것인데, 비문은 해주인 오해건이 지었고, 전면의 봉황대(鳳凰臺)라는 전서와 뒤의 비문은 설송 최규상이 글씨를 썼다.
봉황대 비는 당시 임실의 부호인 봉강(鳳岡) 김종희(金琮熙)가 자금을 내놓아 일제강점기인 1935년 3월에 완공하였다.
봉황대의 전면과 후면의 글씨를 쓴 설송 최규상은 전주최씨 이며 한학자인 최보열의 둘째 아들로 김제 진봉에서 태어났다.
선비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석정 이정직 에게 사사하여 서도(書道)를 연마하였다.
일찍 군산 측량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김제 군청에 근무한 후 백산 면장을 역임하였으며, 석교학교를 창설하여 이를 경영하기도 하였다.
서체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에 능하였으며, 특히 전각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각 법을 보유하여 독창적인 경지에 다 달았다.
중년에 전주에 옮겨와 성재 김태석에게서 전서와 예서, 그리고 전각의 도법을 배웠으며, 경향 각처에서 서화계의 중진들과 교류하였고 작품 전시를 하였으며, 조선 전람회에도 입선하였다.
또한 대동 한묵 회에도 참여하고, 1954년에는 예술원의 추천 회원이 되었다.
1955년에는 덕수궁 미술관 제1회 현대미술 상설전시회에 출품 한 바도 있으며, 만년에는 전주 ‘한묵회’를 효산 이광열과 같이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출처 : 한국지역지흥재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