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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은 고하도에 있는 이충무공과 관련한 유적이다. 현재 정유재란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고하도 진성(鐵城)과 이충무공을 기리는 유적비가 남아 있다. 고하도 진성은 전체 길이 약 1,225m인데, 1,105m 가량만 성벽을 쌓고 나머지는 바위 등의 지형 조건을 성벽으로 이용한 산성 형태로, 여느 수군 진성과는 양식이 다르다. 현재는 진성과 선소(船所) 터 등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명량 해전에서 승리한 후 수군의 재정비를 위해 40여 일에 걸친 탐색 끝에 진을 설치할 곳을 고하도로 정하였다. 고하도가 영산강 하구를 통해 호남 곡창 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며 서남해와 내륙을 잇는 전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1597년 10월 29일 고하도로 들어온 이충무공은 1598년 2월 16일 고금도로 진을 옮기기까지 106일을 머무르며, 군량미 수만 석을 비축하고 병사를 모아 훈련하였으며 전선 40여 척을 확보하였다. 고하도에서의 수군 재건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7년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충무공의 업적과 지략은 후세에 구전하여 유달산 노적봉 전설1)을 낳고, 이는 <목포의 눈물>가사에 담겨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슬픔과 고통을 달래주었다. 1)노적봉 전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바위를 짚으로 위장하여 군량비를 쌓은 노적처럼 보이게 하여 적군을 속여 물리쳤다는 내용의 전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