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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 교조 최제우와 동학사상. 1860년 동학 제1세 교조 수운 최제우는 경주 용담정에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득도하게 된다. 무극대도란 시천주(侍天主) 인간은 원천적으로 신을 모시고 있는 존엄한 존재이므로 귀천의 구별이 없으며 절대로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득도를 하면서 동학이라 명명하게 되는데 동(東)은 우리나라를 의미하며 동쪽에서 받은 학문이라는 뜻으로 동학이라 하였으며 도는 천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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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의암 손병희 동학에서 천도교로 개칭.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의암 손병희는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자 되었고 1세 교조 수은 최제우가 1864년 관에 잡혀 참수를 당하자 법통을 이어 1898년 2세 교조 해월 최시형마저 처형을 당하자 법통을 이은 3세 교조가 되었다. 1905년 12월 1일 그동안 동학을 탄압해오던 광무정권(光武政權)이 무력해지자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다. 손병희는 기독교, 불교, 천도교 합작을 추진하여 3.1운동을 준비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뒤 일본 경찰에 자진출두하여 검거되었다. 1920년 징역 3년형에 형집행정지를 언도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던 중 1922년 5월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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團成社 조선인 극장 단성사의 탄생. 1907년 6월 4일 동대문밖 영도사(지금의 개운사) 대원암에 배우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성의 실업가 지명근, 박태일, 주수영이 그들을 모집아여 단성사 발기대회를 열었던 것이 단성사의 시작이었다. '힘을 모아 뜻을 이루자'는 뜻의 단성사는 배우들에게 활동무대를 제공하고 공연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활발한 복지사업을 펼쳤다. 폐교위기에 몰린 야학이나 고아원등에 기부금을 기탁하고, 폭풍우 피해를 입은 서민들을 위한 성금 모금에 앞장섰다. 애초에 '단성사'란 건물이름이기 이전에 배우들로 구성된 단체의 이름이었다. 발기대회 당시 짓고 있던 연극장은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