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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당시2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1년 4월 12일 전북 전주 출생 1990년 2월 목포 정명여고 졸업 3월 전남대학교 가정대학 식품영양학과 입학 과대의원활동 교지「용봉」편집위원으로 활동 1991년 4월 29일 전남대에서‘고 강경대열사 추모 및 노태우정권 퇴진 결의대회’중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 2만학우 단결하라!”를 외치며 분신 5월 19일 21일간의 병상투쟁 후 운명 |41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고교 재학 중 학생회장에 출마하였고, 전교조와 관련해 사회문제에 일 찍 눈을 떴으며, 대학생활로 더욱 더 진지한 모습으로 운동을 고민해 왔다. 동지는 짧은 커트에 안경을 쓰고 목포출신답게‘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 던, 친구들에겐 색화선지를 곱게 붙여 편지를 쓰고 샴푸와 린스에 수질오염을 일 으키는 성분이 있다고 비누로 머리를 감으며 하이타이도 퐁퐁도 콜라도 손 안 대 던 작은 환경주의자였다. 분신 전날 4월 28일 목포 집에 가서 부모님을 끌어안고“가족들을 사랑한다” 며 해후 한 뒤“내 서랍에 코스모스 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 주라. 항상 함께 하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한 때 몸의 상태가 호전되자 손가락으로‘노태우 정권 타도. 미국놈들 몰아내 자’는 표현을 힘겹게 쓰기도 하며 강인한 투혼을 보였으나 끝내 강경대 열사의 운 구가 광주에 도착할 때인 5월 19일 운명하였다. 동지는 5월 24일 광주 시민들의 애도 속에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영원한 반미구국전사로 잠들었다. ‘사랑하는내친구들아 나는 항상 너희들이 자랑스러웠다. 옆에서 아무리 우리를 흉봐도 그들이 우리가 미워서 그 런것이아니라는것을알았고, 시새움이라는것을알았기에더한층너희가자랑스러웠다. 슬 퍼하며울고있지만은말아라. 그것은너희들이해야할일이아니다. 너희는가슴에불을품고 싸워야하리. 적들에대한증오와불타는적개심으로전선의맨앞에나서서투쟁해야하리. 그 싸움이네혼자만의싸움이아니라2만학우한명한명의손을잡고하는, 함께하는싸움이어 야하리. 내항상너희와함께하리니힘들고괴롭더라도나를생각하며힘차게전진하라. *내 서랍에코스모스씨가있으니2만학우가잘다니는곳에심어주라. 항상함께하고싶다.’ - 통일진군47. 4. 27. 승희- 끝내살리라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