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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으로, 1919년 3월 28·29일에 걸쳐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月串面郡下里) 일대의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이미 군하리에서는 장날인 3월 22일에 3백여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 때 참여했던 조강리(祖江里)의 최우석(崔禹錫)이 조남윤(趙南潤)·당인표(唐寅杓) 등과 함께 다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들은 3월 28일 당인표의 집에 모여, 이튿날 오전 11시에 읍내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있으니 참여하라는 권유문 7매를 만들어 그에게 전달을 부탁하였다. 그는 각 동리를 돌며 이를 전달하고, 이 날 밤 정인교(鄭仁敎)·민창식(閔昌植) 등 수십 명의 동리사람과 함께 인근의 함반산(含飯山)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9일 계획대로 4백여 명의 시위군중이 읍내에 모이자, 그는 그들과 함께 향교와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이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