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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인산객사(悔仁仁山客舍)
객사란 각 고을의 관사로서 관리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객사에는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 정면 8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효종 6년(1655년)과 순조3년(1803년)에 중수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초등학교의 교사와 면사무소로도 사용되었고, 광복후에는 농촌지도소로 사용되어왔다. 1983년에 해체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체할 때 대들보 아레에서 나온 묵서명에 의해 '인산객사'임과 중수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각 고을에 있던 관사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어 매일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배례하였으며, 외국 사신이나 여행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회인인산객사는 지정 당시 회인현 동헌으로 전해왔으나, 해체보수시 발견된 상랼문에서 중건및 중수시기와 인산객사라는 건물명이 기록되어 객사의 배치형식은 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실을 두고 전면에는 중문, 외문과 행랑이 있는것이 보통이나 여기서는 외문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