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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5월 22일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2가 11번지에서 부친 이시우(李時雨), 모친 김신자(金愼子) 여사의 차남으로 출생, 그 형제들을 두고 세인들은 용(상정 독립운동 중국국부군 중장), 봉(상화 민족시인), 인(상백 분학박사 IOC위원), 학(상오 사격협회회장 수렵가)이라 일컫고 있으며 호는 상화(尙火), 백아(白亞), 무량(無量)으로 썼다.
1918년 경성중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3.1운동 대구거사에 허범(許範) 등 동지들과 참여했고,
1922년 《백조》 동인이 된 후로는 잇따라 주옥 같은 시편을 내놓아 일약 시단의 총아가 되었다.
1923년 도일하여 외국어전문교인 〈아테네 프랑세〉에 수학하면서 프랑스 유학의 꿈을 키웠으나 관동대지진으로 귀국, 서울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며 시작에 전념.
1926년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데 이어
1928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소위 「ㄱ당사건」에 직접 참여 활동하였다. 이 시기 서문로 자택을 담교장(淡交莊)이라 하여 배일 인사들에게 개방하였으며,
1930년 에는 애향(愛鄕)의 정이 절절한 「대구행진곡」을 작사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1936년 중국으로 망명한 백씨 이상정(李相定) 장군을 찾아간 일로 귀국과 함께 또 한차례 수난을 겪었고, 구금이 풀리자 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민족사상 고취에 힘썼으나 오랜 심화로 얻은 병세악화로
1943년 4월 25일 계산동(桂山洞) 자택에서 부인과 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시니 향년 43세였다.
1990년 정부에서는 선생에게 국민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