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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광복회 조직 이전의 활동 김한종의사는 일제의 한국강점이후 충청도지역에서 국권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의사는 사방으로 동지들을 규합하던 중 1916년 7월에 김경태(金敬泰), 김재창(金在昶)과 함께 부여의 이철영(李哲永)집에서 조선총독이 부여지방을 시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선총독 암살을 모의하였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일본경찰이 의사의 집을 수색하기에 이르렀고 김한종을 비롯해서 이 계획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각자 피신하게 되었다. 멀리 경상도, 풍기, 경주 등 지로 숨어다니며 최기중, 박상진, 우이견선생 등을 방문하여 나라 찾을 뜻을 모으셨다. 드디어 1917년 7월 보름날 대구달성공원에서 김한종, 박상진, 최기중, 김좌진, 장두환, 우재룡, 김경태, 엄정섭, 윤흥중선생 등 비밀리에 모인 200여명의 동지들과 피로써 하늘에 맹세하고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그 지도자로서 기호지방 책임자를 겸하셨다. 만주등지에 무관학교를 세워 광복군을 양성하여 힘으로 조국을 되찾기로 하여 김좌진, 박성태선생 등을 만주로 보내고 국내외의 힘을 크게 모으고자 군지금 조달의 책임을 자신 의사께서는 전재산을 팔아 충북 괴산군 칠성면 두청리, 인천 미두장, 경북, 서울 등지에 광복군의 연락장소를 설치하고 국내부호들로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막대한 군자금을 거둬 해뢰의 동지들에게 보내는 한 편 친일분자를 응징하고 동포의 애국심을 일깨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