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page


206page

1801 신유박해. 1801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의 섭정으로 정순왕후가 천주교를 탄압, 교인들을 투옥하고 참형한 사건을 말한다. 이것은 서학 자체에 대한 동기보다는 정조가 죽은 이후 정권 다툼에서 야기된 것이다. 당시 은밀한 활동을 하던 주문보 신부는 박해가 일어나자 이는 자신을 목표로 한 것임을 알고 자수하여 1801년 새남터에서 처형당했다. 순조원년의 1년에 걸친 박해로 주문보 신부외에 이승훈, 이가환 등 100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되었다. 이때 좌.우포도청에서 심아기, 김기우, 박중환, 조신항 등 4명이 순교했다.
206page

1839 기해박해. 1839년에 일어난 제2차 천주교 박해다. 그 이면에는 안동김씨의 세도를 빼앗으려는 벽파 풍양조씨의 권력다툼이 있었다. 기해박해부터 모든 순교자들이 1차적으로 포도청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고, 이때 포도청에서 옥사하거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순교한 순교자만 민극가(스테파노), 김성우(안토니오), 최경환(프란치스코)등 39명에 달한다.
206page

1846 병오박해. 병오박해는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다. 그는 한국인 처음으로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였다. 병오박해때 포도청에서 순교한 순교자는 7명이며, 이 중 남경문(베드로)과 임치백(요셉)은 좌포도청으로 순교자가 명시되어있다.
206page

병인박해. 1866년 일어난 병인박해는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무려 8년이나 계속되었으며 그 피해도 엄청났다. 이 때 포도청에서 순교한 순교자는252명에 달하며, 이는 병인박해기에 와서 천주교 신자들은 체포하고, 심문하고 처형하는 포도청의 역할이 크게 강화되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