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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마을-북평이진
북평 이진마을은 1909년 항일 의병운동과 1930년대 전국 최대 조직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중심 마을이다. 이진마을 출신인 황두일은 1909년 서남해안에서 활동했던 의병대장 중 한 명이었다. 황두일을 비롯한 해남의병들은 북평면 성동암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왜군에 밀려 대흥사 심적암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심적암에서 일본군에 의해 의병 대부분은 참사를 당하고 황두일도 이후 사형을 당한다. 1930년대 북평 이진마을을 중심으로 전국최대 항일조직인 전남운동협의회가 구성된다. 중심인물은 이진마을 출신인 동경 유학파 김홍배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해남 완도를 비롯해 10개 군에 걸쳐 조직된 당시 최대 규모의 항일조직이었다. 이진에 있던 사설학원인 동강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주로 성도암과 심적암에서 비밀모임을 갖고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이들의 활동은 2년여 만에 막을 내리지만 활동범위가 워낙 넓어 사건 발각 당시 연행된 숫자만도 1000여명이 넘었고 구속된 사람은 57명에 이르렀다. 이진마을은 명량으로 향하던 이순신이 3일간 머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