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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갚겠습니다.」 라고 朝夕(조석)食告(식고)때에 至誠(지성)껏 祈禱(기도)하라고 密令(밀령)을 내리셨다. 이렇게 멸왜기도와 우리나라 主權(주권)回復(회복)運動(운동)이 極秘裏(극비리)에 進行(진행)되던 途中(도중) 布德(포덕)79년 (1938) 2월 17일 이 事實(사실)이 信川(신천)警察署(경찰서)에 摘發(적발)되어 外部(외부)로 露出(노출)擴大(확대)되었다. 그리하여 黃海道(황해도) 淵源(연원)代表(대표) 洪順義(홍순의)를 筆頭(필두)로 최준모와 中央(중앙) 幹部(간부) 여러분이 被檢(피검)되었고 春菴上師(춘암상사)께서는 老患(노환)으로 病床(병상)訊問(신문)에 그쳤으나 이로 인하여 全國(전국)各地(각지)에서 數百(수백)名(명)의 敎役者(교역자)들이 投獄(투옥)되었었다. 임실에서도 崔鍾箕(최종기) 金漢京(김한경) 金敎升(김교승) 崔宗澤(최종택) 朴成言(박성언)등이 滅(멸)倭(왜) 기도사건으로 被檢(피검)되어 酷毒(혹독)한 拷問(고문)을 받았었다. 그러한 고문여독으로 출감 후 즉시 환원한 분이 김재규(장흥) 손필규(논산) 이강우(해남) 金(김)鼎(정)三(삼) 네 분이었다. 전세임진 왔다가서 순싼일 못했다고 쇠술로 밥을 먹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으면서 朝鮮(조선)侵略(침략) 하기 위하여 삼백여년동안 畫(화)策(책) 해온 日本(일본)이 3년동안이나 전교회적으로 멸외기도를 실행한 천도교인들을 無罪(무죄)로 釋放(석방)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物理的(물리적) 降服(항복)이 아닌 精神(정신)적 降服(항복)이었다 그러므로 무인멸왜기도는 갑오 동학혁명과 3.1운동의 정신적 脈絡(맥락)을 이어받았다. 南北(남북)分斷(분단)의 祖國(조국)이 아직도 統一(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오늘 멸왜 기도의 精神的(정신적) 意義(의의)를 되새기고 民族正氣(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이 碑(비)를 세워 先烈(선열)들의 거룩한 殉道(순도)殉國(순국)精神(정신)을 千秋(천추)萬代(만대)에 傳(전)한다.
戊寅滅倭運動謨議加擔者名單(무인멸외운동 가담자 명단) 無順(무순)
崔宗箕(최종기) 金漢京(김한경) 崔宗澤(최종택) 金敎升(김교승) 朴成言(박성언) 李洪國(이홍국) 宋化仲(송화중) 李富淵(이부연) 金正三(김정삼) 李成男(이성남) 李成祚(이성조) 李洪燮(이홍섭) 李銀潭(이은담) 李元潭 (이원담) 朴俊表(박준표) 李晩得(이만득) 池相文(지상문) 李鍾貴(이종귀) 黃鎬仲(황호중) 李福永(이복영) 李道根(이도근) 李起喆(이기철) 林八葉(임팔엽) 朴永俊(박영준) 黃鎬益(황호익) 林鍾基(임종기) 李鎭實(이진실) 崔福祿(최복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