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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 피를 뿌리었다. 1910년 경술에 나라 일제에 망하자 학교도 화를 당하니 선생은 비밀히 결사 국혼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뒤쫓는 일경의 탄압으로 기호와 영남으로 떠돌며 그 일을 머추지 않으시었다. 선생은 병은 흉기지만 적을 막는데 도움이 되니 군비 있어야 한다는 병론과 서세와 일본의 침략으로 아시아 급변하니 한국 시급히 개혁자강할 것을 촉구한 아세아동시 국변론과 일본 대한정책론을 펴며 한국작신책에 이르러 침략을 두려워 말고 힘차게 항쟁하라. 하늘이 도와줄 것으로 믿지 말고 새로운 학문에 힘쓸 뿐이며 개혁자강은 주권이 고루 민에게 혜택을 주어 인지의 발달로 애국의 힘 늘게 할 것이다. 민족 역량을 총집하여 자유 권리를 확립하고 경제발전으로 국력을 배양하자. 교육에 경제와 과학을 치중하고 신문을 육성 급변하는 실정을 빠르고 바르게 알리게 하며 사회 정치 문화의 단체를 보호 성장시켜 힘차게 애국실력을 키우자 하시었다. 1919년 기미 3월 거족적으로 대일항쟁을 할 때 만주로 건너시어 민국 독립단에서 담의의 장으로 진력 1921년 한때 귀국 동지를 연락할 새 경주 대구에서 일경 추적의 위급을 모면 다시 록강의 물을 넘으시었으니 이역에서 고국의 독립을 한 때인들 잊으셨으리오. 1923년 임시정부의 국민대표회의 있자 선생은 창조파의 길을 택하시었으며 단재 신채호 선생과 다물단을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