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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푸릇한여름잔디가자리를잘잡고있어서경희대학우들이즐겨찾던장소였다. 방송국에 있던 방송 국원들은 너나없이 임간교실로 나와서 잔디 위에 둘러앉았다. 주전부리와함께가져온뻥튀기를대학주보위에다한무더기씩쏟아놨다. 누군가 대학주보 쪽에서 보면 어쩌려고 대학주보를 뻥튀기 깔개로 쓰냐고 했지만, 딱히다른마땅한걸구할수도없었다. 어쨌거나 50년 전의 아름답고 풋풋한 청춘들은 그 자리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긴 여름 해가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서로 즐겁게 어울려가며 재미있는 게임도 하며 시간 가는줄몰랐다. 이것이‘퐁퐁파티’의시작이다. 퐁퐁파티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재밌다.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군가가 쌀로 만들 어온 뻥튀기가‘퐁퐁’하는 소리를 내며 튀겨졌을 거라며, 이 소리에 착안하여‘퐁퐁파 티’로명명키로했다는것이다. 그때 하던 놀이가 (그 당시는 게임이라는 용어도 잘 안 쓰던 시절) 수건돌리기, 노래부 르기, 깡통차기 같은 유치찬란한 것들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행 복했다니지금시각으로볼일은아닌듯싶다. 그 후‘퐁퐁’은 매년 여름 한때를 장식하는 VOU 연례행사로 자리 잡아 갔다. 장소 도 때로는 임간교실을 벗어나 모교 정문 앞‘경희센타’식당(현재 고황약국 건물 2층에 있던식당)등으로장소를옮겨가면서하기도하는등점차모양을갖춰갖다. 이승일동문은이걸퐁퐁이‘고급스럽게’변해갔다고표현하셨다. 지금은 아쉽게도 퐁퐁파티 테이블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한 동안 퐁퐁파티는 66년 초기 때의 퐁퐁파티의 주인공인‘뻥튀기’가 기본 먹거리로 빠지지 않고 올라왔다. 퐁 퐁파티의오리지널리티를지켜가기위한나름의노력임은두말할나위가없다. 어느 시점 이후에는 퐁퐁파티가 점차 발전하여 졸업한 동문들도 참여하는 동문 파 티의형태로변해갔다. 80년대 들어 장소도 교수회관을 활용하는 등 점차 다양하게 변모해 갔는데, 모든 VOU 퐁퐁파티 |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