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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수 선생의 생가는 이곳이 아닌 저쪽 외진 곳이지만, 사람 왕래가 많은 이곳에 세웠다고 하신다.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33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등내목(藤乃木) 심상고등소학교 고등과를 고학으로 졸업한 후, 1941년 4월부터 대판시립 유도(酉島) 제2공업학교 응용화학과에 다녔다. 평소 그는 민족차별에 분개하여 오던 중, 1941년 2월에 조성인(趙成寅)·강연중(姜鍊中) 등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이들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였다. 또한 그는 조성인과 독립운동의 투쟁방법에 관하여 의논하고 항일결사 개진대(改進隊)를 결성하였다. 그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운동방침을 정하였는데, 즉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피폐해진 일제에 미·영·소가 참전하게 되면 일제의 패망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이때를 이용하여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같은 계획아래 그는 동지포섭에 힘을 쏟았으며, 동년 8월에는 강연중과 함께 그의 활동조직으로서 항일결사 조선독립청년당(朝鮮獨立靑年黨)을 결성하였다. 이때 당칙 및 부서와 행동강령도 정하였는데 이때 그는 당령으로 추대되었다. 또한 조직확대에도 노력하여 하부조직으로서 대판내 우유배달클럽 및 신문배달클럽과 유도(酉島) 제2공업학교·관서공업학교·대판공업학교 등에 학생클럽을 결성하였다. 이렇듯 조직을 확대하여 항일활동을 벌이던 중 동년 10월에 동결사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었다. 피체 후 1942년 8월 31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