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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고등학생 김철수 열사의 삶의 여정
1973년 3월 30일 전남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에서 3남 3녀 중 4째로 출생하신 열사는 보성중학교를 거쳐 1989년 보성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풍물패 "솔개", 봉사동아리 "인터렉트" 활동 등을 하였다. 1990년 생활영어 최우수상 수상, 1991년 모의고사 문과 수석 등을 하였지만 "현 시국이 어떤 사회로 흘러가고 있는지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자기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로보트로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유언에도 남겼듯이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 주는 교육 대신 입시교육, 제도교육으로만 치닫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불면의 밤을 지세우며 변화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였다. 3일 동안의 단식과 평소 아끼던 물건들을 벗들에게 나눠준 열사는 당시 정권의 잘못된 교육 정책을 질타하고 시대 변화를 염원하며 우리와 이별을 준비한다. 당시 19세였던 열사는 1991년 5월 18일 보성고등학교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 기념식 도중 학교 건물 뒤편에서 온 몸에 신나를 끼었고 불을 붙인 체 150여미터를 운동장으로 달려와 '이런 교육을 계속 받을래? 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를 결행하였으며, 병원으로 이송 도중에는 우리의 소원을 불러 달라고 하였다. 열사의 분신 이후 전국의 고등학생들은 학생회 직선제, 동아리 활동 보장,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보충 자율학습 변화, 학생 인권 존중, 참교육 실현 등 그 동안의 염원을 공개적으로 외치기 시작하며 전대 병원으로 모여들었고 이후 실제 변화된 교육의 새 지평이 열리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직접적인 행동을 통한 시대 변화와 따뜻한 양심으로 교육의 변화를 바랐던 그는 운명 3일전 "여러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확실히 믿습니다"라는 육성 유언을 남기고 보름 동안 화마와 싸우다 6월 2일 우리와 아픈 이별을 한다. 이스크라 같던 정신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영원한 고등학생 김철수 열사는 6월 9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제3묘역에 시대의 증표를 남기고 불멸의 삶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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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의 불꽃 김철수 열사 약력
1973년 3월 30일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829번지 출생.
1989년 3월 4일 보성고등학교 입학, 풍물패 "솔개", 봉사 동아리 - "인터렉트" 활동.
1990년 생활영어 최우수상 수상.
1991년 3월 모의고사 문과 수석.
1991년 5월 18일 보성고등학교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 기념식 도중 분신 항거.
1991년 6월 2일 오전 11시 30분 전남대 병원에서 참교육의 불꽃으로 영면.
1991년 6월 8일 전남대 병원 앞 노제, 보성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영결식 거행.
1991년 6월 9일 옛 전남도청 앞 "애국학생 고 김철수 열사 민주국민장"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안장.
2001년 5월 29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원회로부터 민주화 운동 관련자 인정.
2002년 2월 15일 보성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상 수여.
2017년 10월 28일 보성고등학교 교정에 추모비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