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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규 선생의 자는 여중 호는 입암으로 의암 유인석 선생의 문하인으로 봉양면 구학리에 거주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친일내각이 조직되어 국정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통분한 애국지사들과 1895년 유인석 대장의 의병진에 편성되어 위국충정을 불태우다가 조선 13도에 보내는 격문을 기초하기도 하였으며 후에 참모가 되었다. 1896년 1월 19일 왜적의 재침으로 충주 전투에 독려차 나갔다가 북문루 아래서 전사하였다. 묘소는 봉양면 구학리 좌이다. 아들 현구는 집안 사람들과 결별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상복을 벗고 종군하여 싸우다가 울분이 병이 되어 집으로 돌와왔으나 바로 죽고 말았다.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 공로의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서기 1989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