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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구려(白下舊慮)
기념물 제137호이기도 한 이 건물은 김대락과 그 후손들이 세운 독립운동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2008년 5월 9일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김대락은 1907년 내앞마을에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가 설립되자 처음에는로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1909년 초에 이르러 신교육을 수용하여 백하구려를 협동학교 교실로 제공하고,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안동은 물론 영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나라가 망하던 1910년, 김대락은 마을과 인근의 청장년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여 한인들을 지도하고,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하다 1914년 12월 삼원포 남산에서 작고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뜻은 여동생인 김락, 집안 조카 김만식, 김정식, 김규식, 종손자 김성로의 항일투쟁으로 계승되어 나갔다. 나라에서는 이들의 우뚝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유공자로 포상하고, 백하구려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