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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장에서 태어나 나라 위해 순국하신 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성은 정이요, 이름은 규환이며 본관은 동래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나라 잃은 서러움이 가슴에 맺혀 21세의 짧은 생애는 오직 내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에 불타 누구의 선도를 기다릴 것 없이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려고 할 즈음 사나운 광풍으로 무참히 꺾겨 끓는 피 한 목숨을 나라에 바쳤으니 장렬하도다. 공은 어릴 적부터 천자가 남다르고 기질이 강직하며 영민하였다.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할 때 문리를 일찍 깨우쳐 신동이라 칭송을 받았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이 고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6세 되던 해 서울의 휘문의숙에 재학 중 1919년 기미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공은 학업을 중단하고 이 운동에 동참코자 고향으로 달려와 동지 고재경 정재완 등과 모의하여 동년 3월 25일 안의장날을 기해 장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두 고창키로 계획하고 격문을 요소에 써 붙이고 주민들에게 거사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던 중 계획이 누설되어 왜경의 수핵이 시작되니 거사는 좌절되고 또한 각지에서 들려오는 왜경의 악랄한 만행에 독립의 염원은 더욱 불타올라서 흉악한 무리들과 맞설려면 오직 투쟁뿐이라 결심하고 독립결사대를 조직하여 주민들을 은밀 계몽하고 동지 규합에 힘쓰면서 동년 11월 15일 자정 무렵 관내의 어느 재산가에게 독립운동군 자금으로 금 일만원의 찬조를 요구한 사실이 탄로되어 3인 모두 체포되니 공은 결사대 조직의 주모자이며 자금책과 격문 선포문 작성의 주범이라는 죄목으로 왜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사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1920년 1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보안법위반 및 강도죄를 적용하여 3인 모두 징역 2년이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