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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24년 6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② 작은 소리 큰 울림 니었지만, 미혼인 사람에게는 매달 75길더 (Guilder, 당시 환율로 약 40달러), 결혼한 가 장에게는 220길더를 지급했다. 1951년 2월 횡 성전투를 비롯하여, 5월 가리산 전투와 인제 전투, 7월 대우산 전투, 1952년 2월 별고지 전 투 등 여러 전투 및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군 124명이 전사했고 645명이 부상 당했다. 이 중 수리남 참전용사 2명 2) 이 사망하 고, 2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수리남으로 돌아간 참전용사들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가난과 질병으로 사망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수리남으로 귀국한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은 네덜란드 정부의 관심 과 예우를 받지 못한 채, 대부분 가난과 질병 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1975년 네덜 란드로부터 독립 후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결 성되었고, 2019년 회장 반 러셀(Van Russel) 씨가 사망하고 난 후 윌프레드 반 곰(Wilfred Van Gom) 씨가 인계받아 2023년까지 활동 했다. 2010년 우리나라 정부는 6·25전쟁 발발 60주년 기념식에서 생존한 참전용사 5명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했고, 현재까지 유엔 참전 용사 재방한(再訪韓) 초청 사업(Revisit Korea Program)과 현지 대사관 초청행사를 거행하 고 있다. 2023년에는 유일한 생존자인 윌프레 드 반 곰씨를 초청해서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참전 국가 간의 우호 관계를 다 졌다. 1952년 네덜란드 로센달에 있는 수리남 병사 훈련캠프(Nationaal  Archief[Nederland] 제공) 구축함에서 촬영한 6·25전쟁 참전 네덜란드군 단체 사진(전쟁기념 관 6·25전쟁 아카이브 제공) 2) 수리남 출신의 전사자 J.W. Bandison과 H.G. Seedorf는 거의 70년 동안 국내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분류되어 수리남 출신임을 알 수 없었 으나, 주 베네수엘라대사관 박민수 실무관의 협조로 2021년 1월 12일 최종 확인되었다. J.W. Bandison(25세)은 1951년 10월 13일 미사일 공격 으로 머리와 오른쪽 다리 부상으로 전사했고, 부산 유엔기념공원 네덜란드 25구역 2447에 안장되었다. H.G. Seedorf(32세)는 1951년 10월 8일  미사일 공격으로 오른쪽 사타구니와 왼쪽 무릎 과다출혈로 전사해 네덜란드 25구역 2445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