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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本齋記(보본재기) 까마귀는 그의 어미에게 反哺(반포)하였으므로 효도의 이름을 얻었고 호랑이도 하나의 孝獸(효수)였으므로 어린 호랑이 宗彞(종이)가 용포구장(龍袍九章)중의 하나로 꾸며지지 않았던가 이러한 報本的(보본적)인 일은 禽獸(금수)에도 없지 않았거든 하물며 만물의 靈長(영장)인 人類(인류)알까보냐 報本齋(보본재)는 밀양박씨의 일문이 그의 선조 松隱朴翊(송은박익)相公을 위해 세운 묘재이다. 공의 體魄(체백)은 일찍이 조선 태조7년인 1398년 戊寅(무인)에 청도면 고법리 소고야에 안장되었으나 중간에 실전되었다가 임란이후에 찾아 香火(향화)가 이어졌다. 1794년 정조 甲寅(갑인)에 후손 監察鼎監元進士潤德(감찰정원진사 윤덕)등이 追慕齋(추모재)를 세웠고 1803년 순조 癸亥(계해)에 重修(중수)하여 報本齋(보본재)라 개편하였고 1857년 철종 丁巳(정사)에 增築(증축)하였고 1925년 乙丑(을축)에 舊榭(구사)를 철거하고 중건하였다. 공은 1332년 고려 충숙왕 壬申(임신)에 태어나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中書令(중서령)에 이르렀으며 여러차례 島夷(도이)를 정벌하여 대공을 세웠다. 급기야 공양왕이 遜位(손위)하자 不食李栗(불식이율)을 맹세하고 밀양고장에 歸隱(귀은)하여 1398년 戊寅(무인)에 卒(졸)하니 享年(향년)이 67세였다. 좌의정과 충숙공의 諡號(시호)가 추증(추증)되었고 밀양 德南書院(덕남서원) 청도 龍岡書院(용강서원) 단성 新溪書院(신계서원)에 入享(입향)되었다. 지난 1997년에 후손들이 송은선생 600주기 추모사업추진위원회를 창립하여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할제 治鉉(치현)군이 보본재 沿革(연혁)에 관한 事蹟(사적)을 적에 나에게 記(기)를 청한다 나는 일찍부터 박씨일문의 爲先丹枕(위선단침)이 지극함에 艶歎(농탄)한바 오래되었고 또 여러차례 그의 爲先文字(위선문자)를 撰(찬)한바 있으므로 이제 사양하지않고 欣然(흔연)히 이글로써 慈孫(자손)의 真懇(직간)에 갚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