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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 고려말 녹사 한유한 선생이 악양현 외둔 마을에 낙향하여 안착하자, 선생의 인품과 학덕이 인근에 널리 알려져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고 후학 양성에 정진하였다. 훗날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인사들이 모이자 풍천인 노영수가 외둔 정호재에서 여러 선비들의 뜻을 모아 동정호반에 선생을 기리는 모한정을 건립하려 했었으나 여의치 않자 1931년 악양천변 섬등에 모한정을 건립 그후 취간정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정자는 없어지고 숲만 번창하여 취간림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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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 고려말 녹사 한유한선생이 악양현 외둔 마을에 낙향하여 안착하자, 선생의 인품과 학덕이 인근에 널리 알려져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고 후학 양성에 정진하였다. 훗날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인사들이 모이자 풍천인 노영수가 외둔 정호재에서 여러 선비들의 뜻을 모아 동정호반에 선생을 기리는 모한정을 건립하려 했었으나 여의치 않자 1931년 악양천변 섬들에 모한정을 건립 그후 취간정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정자는 없어지고 숲만 번창하여 취간림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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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 고려말 녹사 한유한선생이 악양현 외둔 마을에 낙향하여 안착하자, 선생의 인품과 학덕이 인근에 널리 알려져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고 후학 양성에 정진하였다. 훗날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인사들이 모이자 풍천인 노영수가 외둔 정호재에서 여러 선비들의 뜻을 모아 동정호반에 선생을 기리는 모한정을 건립하려 했었으나 여의치 않자 1931년 악양천변 섬들에 모한정을 건립 그후 취간정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정자는 없어지고 숲만 번창하여 취간림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