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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2월31일 수요일 2 (제228호) 관향조 종친회 무안박씨 전국청장년연합회 창립13주 년을 맞은 정기총회가 지난 6일 오전11시 전남 무안군 무안읍 소재 무안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전국 각 지구 회장과 임원진 등 60여명이 참석하면서 성황리에 개최되 었다. 이날 정총은 각 지구에서 순회 주최한 전통에 따라 무안군청년회(회장 석장)에 서 주최하고, 연합회 박주화 회장과 사무 국장 박금만, 광주청년회 박순재 회장, 노 성파 청년회 박해담 회장, 대구청년회 박 성대 회장, 진도청년회 박병림 회장, 서울 청년회 박지홍 회장 등이 적극 동참 및 후 원하면서 청장년회와 대종회 발전을 위한 토론이이어지면서소통과유대강화,전통 계승을위한장이되었다. 고고장구의 식전공연으로 행사장을 뜨 겁게달군가운데유공자표창에이어박석 장 무안파 청년회장의 환영사, 박주화 연 합청년회장의 대회사,박근배 대종회장의 격려사가 이어졌고,안건토의에서는 제14 차정기총회개최지로충남논산의노성파 청년회에서유치키로하였다 박석장 회장은 청년회 초대회장으로 연 합청년회 초석을 깔아준 박중환 회장, 대 종회장재임때물심양면으로청년회를지 원해준 박형준 회장, 무안파 전 회장으로 무안청년회발전을이끌어준박민치회장, 박종길 무안파 청년회 제2대 회장에게 공 로패를 전달한 후 환영사를 통해 오늘 정 기총회를통해전국회원들의뜻을모아한 핏줄임을 인식하고 단합 단결하여 유대강 화와 전통계승의 디딤돌이 되어 대종회는 물론무안박씨라는자부심을가질수있도 록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고 황토의 땅 무 안에온것을진심으로환영한다며환영사 에갈음했다. 박주화 연합회장은 오늘 정기총회를 통 하여 많은 지역회원님들과 소통하면서 희 망의 씨앗이 불사르듯 무안박씨 대종회는 물론청장년연합회가더욱발전하는계기 가 되길 바란다며 행사를 주관한 박석장 무안청년회장님과 회원여러분에게 감사 의말씀을전한다고말했다. 박근배 대종회장은 뷺우리 가문의 미래 를이끌어갈청장년들이한자리에모인뜻 깊은 날뷻이라며 뷺여러분의 열정과 노력이 무안박씨의 전통을 빛내고 있다. 어떠한 어려움이라도함께하면극복할수있음을 기억하고 선조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새 로운가치를창조하자뷻며독려했다. 무안박씨청장년연합회는 지난 2008년 서울 무영회 정총에서 청년연합회 구성을 협의한 이후 같은 해 12월 서울 우이동에 서 서울,해남,부산 청년회가참석하여제 1회대회를가졌다. 그리고 무안, 언양, 대구, 대전, 광주 청 년회 등 각 지역과 지파 청년회가 동참하 면서 더욱 활성화 되었다. 그리고 차기 개 최지인노성파청년회는2017년제10차정 총을충남논산시상월 면학당리당호재에 서 성대하게 개최한바 있다. 이에 박해담 회장은 차근차근 준비하여 청년여러분들 이 하루를 만끽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직후에는장소를무안파청년회원 이 운영하는 ‘우가식당(대표 박진오)’에 서 준비된 오찬을 함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석별의 시간을 아쉬워하는 청년들에게 무안파청년회에서 준비한 버 섯 선물세트를 전달하며 깊은 정을 나누 었다. 한편 이날 13차 정총을 무난하게 치룬 무안파청년회는제2대박종길회장이201 9년 제11차 정총을 유치하였고,이번 제13 차 회의를 제3대 박석장 회장이 유치하면 서전종원들의칭송이자자하다. ㈜신해건설 대표이사로 지역사회 봉사 에앞장서온박석장회장은‘만남’을강조 한다.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그럼으로 인 해 더 발전하는 종중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다. 박 회장은 현재 무안군 청년연합회장, 현경중학교총동문회장,무안군체육회이 사,무안군문화원 감사,‘무안교육청참여 위원, 건강보험공단 무안신안자문위원, 대한체육회FC무안축구스포츠클럽회장 을 맡으며 조건 없는 봉사로 일관하면서 지역은 물론 종중에서도 박성(朴姓)을 빛 내고있다. 무안박씨전국청장년연합회정기총회 성료 소통의공간속에유대강화와전통계승에디딤돌장되어 박근배대종회장 박주화청년회장 박석장 무안파 청년회장(右)이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주고 후원해준 박민치 무안파 전 회장에 게공로패를전달하고함께하고있다. 세조(재위 14 55∼1468)가 단 종을 폐위할 때 뜻을 굽히지 않 고 절의를 지켜 죽어간 사육신 이하 여러 충신 341위(位)와 고 려조의 충신이 며 유학자인 포 은 정몽주, 목은 이색,야은 길재, 신 라 만 고 충 신 관설당 박제상,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 공의 추모 제향이 지난 13일 충남 공주시 숙모전과 삼은각, 동계사에서있었다. 이날 제향은 오전 10시 단종과 충신 341 위의제향을맹교성집례관의창홀에따라 500만 박씨대종친회 박성수 총재, 전국농 민회 성효용 대표, 충남도의회 박미옥 의 원이 차례대로 헌작하고 이기화 대축관의 독축으로 진행되고, 관설당 박제상 공의 위패가봉안된동계사제향은숙모회성상 용 장의의 집례로 영해박씨대종회 박영수 부회장이 초헌관으로 분향과 강신 전폐례 에 이어 첫잔을 올리고, 이어 문화유씨대 종회유인홍부회장의아헌,영해박씨대종 회박종래부회장이종헌관으로각각헌작 하고 강원식 축관으로 독축으로 30여분에 걸쳐엄숙하게봉행되었다. 이날제향에는전남곡성에서원하현종 을비롯한후손들이새벽5시 어둠을 뚫고 동무 합독에 모셔진 선조 계우(季愚,난계 박연의 삼남)공을 추모하기 위해 숙모전 을 찾았다. 그러나 합독에 모셔진 선현들 의 예우에 서운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숙 모전의동서무에는주요인물의위패에술 과폐백이따로따로올리지만합독에배향 된 분들은 삼실과와 포를 광주리에 담고 큰술잔이올려진다. 이밖에도 규정공파대종회 박낙규 회장 을 비롯한 임원진과 종원 등이 대거 참례 하였고, 좌복야공파, 순천박씨, 관설당공 파 대종회 임원진이 참석 선조의 충혼을 달랬다. 숙모전과 동계사에 배향된 주요 박씨 선현은 관설당 박제상(동계사)을 비 롯하여 숙모전 서무에 문민공 박중림(文 愍公 朴仲林), 충강공 박쟁(忠剛公 朴켰 ), 충정공박팽년(忠正公朴彭年),충정공박 심문(忠貞公 朴審問), 교리 박인년(敎理 朴引年), 검열 박영년(檢閱 朴永年), 임회 당박희권(臨淮堂朴希權 ),절도사박대손 (節度使 朴大孫), 문경공 박충원(文景公 朴忠元), 수찬 박기년(修撰 朴耆年), 집현 전박사박대년(集賢殿博士朴大年),국당 공 박흥생(菊堂公 朴興生) 등 13위이다. 이중 문민공 박중림, 충정공 박팽년, 교리 박인년,검열 박영년,수찬 박기년,집현전 박사박대년은부자지간이다. 한편멀리진도에서올라온박종온관설 당공파대종회 부회장(경주박씨)과 함안 에서 올라온 종원들은 귀갓길에 계룡산에 서수십년째수련중인기천문박사규문주 를찾아일련의종사(宗事)를알리며의논 했다. 기천문 박사규 문주는 기천문의 2대 문 주이다.이날도서울에서많은대학생들의 수련을위해찾아분주함에도종친들을반 갑게 반기며 따뜻한 위로와 함께 중식을 대접하고환송했다. 공주숙모전·동계사추모제향봉 행 이른새벽부터선현의충절을기리기위해150여후손찾아 관설당박제상선생의충절을기리기위해경주·강릉·영해박씨등후손들이 공주동계사를찾아제 향봉행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단종대왕의 위패가 봉안 된 숙모전의 종헌관으로 헌작한 박미옥 충남도의 원 전남 창평에 진사 답(沓)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는 기틀을 마련한 밀성 박씨의재공종중의가을시향이지난 9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금현리와 광 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선영에서 각각 봉행되었다. 이날 향사(享祀)는 먼저 오전 11시 금현리 선영에서 광릉참봉에 이어 조 산대부 선공감 직장을 지낸 휘 만령 (萬齡, 호 요당)과 아들 참봉 대인(大 仁,호도암)의시향을상섭총무의집 례로원로종친인진규현종의초헌례 에 이어 연규, 근호 현종 순으로 각각 헌작하고 상섭 총무의 독축으로 이어 졌다. 이후 장소를 쌍가매 선영의 고직당 공(휘 영철)과 장등동 선영의 송고공 (휘홍정)묘역에서는 행순종손이초 헌관을, 이어 일호, 현준 현종이 각각 제관을맡았다. 의재공종중은고려말개경에서전 남담양으로세거지를옮긴이후지역 의문풍을일으키는일에앞장섰다.고 려벽상공신박춘선생의증손의재공 의 휘는 번(蕃)으로 호는 의재(毅齋) 이다. 성종4년(1473년)에태어난그는문 과에 오른 후 통훈대부 고산 현감 겸 전주진영병마절제도위를 지내고 가 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 위도총부도총관에추증되었다. 그리고아들요당공휘만령은조산 대부 선공감 직장, 손자 도암공 휘 대 인은 광릉참봉, 증손 송고공 휘 홍정 은 중종 기해(1539년)생으로 성균 진 사이나 대과를 접고 낙향하여 후학양 성에매진했다.그리고그의아들고직 당공(휘 영철)은 59세 되던 인조(仁 祖) 2년(1624) 갑자(甲子) 식년시(式 年試) [진사] 3등(三等) 7위(37/100) 로진사시에오른후광해군의혼탁한 정치를지켜보며과거에뜻을접고후 학양성에 집중했다. 그러나 계모(繼 母) 광산김씨께서 남의 자식은 출세 하여부모를즐겁게하는데하는푸념 섞인 말에 68세에 이른 인조(仁祖)11 년(163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0위(30/33)로 합격 병조 좌랑 승정원 승지 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타고난효자이다. 한편고직당공은모금을통해논20 0여 두락을 마련하여 일명 진사답이 라 하고, 진사시에 합격 후 성균 관에 입학한유생들의학비를대주는장학 제도를 통해 당시 창평지역에서 소과 및 대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해 창평향 교에그기록을적은공덕비가세워져 있다.이에의재공가문은지금도지역 유림들로부터 지역의 문풍을 일으킨 가문으로명성이자자하다. 한편 이날은 종중의 정기총회일이 다.박근호회장은갈수록참여하는종 원이 적어 아쉽다며 종원들을 독려했 으며, 상섭 총무는 그동안 결산을 보 고하고광주북구화암동선영일부가 캠핑단지에 편입되어 매각 협상 과정 을보고하고조만간이를매듭짓고재 실 건립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말했다. 밀성박씨의재공파종중시향봉행 전남창평지역문풍(文風)일으킨선조의학덕기려 고직당공묘소에서독축을하고있다. 음성박씨 정승공파종친회(회장 희진) 는지난4일오전입향조(휘계양)이하선 조 시향과 오후 벽진서원 추향 제례를 성 련원로고문의제례지도와집례로풍암동 묘원과 벽진서원 의열사에서 각각 봉행하 였다. 정승공파광주입향은조선초첨의정승 을 지낸 휘 원(洹, 정승공파 파조)의 아들 성균생원 휘 계양(繼陽)이 정읍에서 입향 한 입향조이다. 광주 유곡에 새 터전을 점 지하고, 사마시에 합격하고도 더 이상 현 달(顯達)을구하지않았다. 아들 형지(亨之)는 선대의 덕업(德業) 을 계승하여 현달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자질(子姪)들에게 충효(忠孝)의 도(道) 로서 지도하였으며 음사(蔭仕)로 선무랑 예빈시주부에 제수되었고, 장남 자회(子 回)는 경술(經術)과 효우(孝友)로 장사랑 (將仕郞) 전연사(典涓司) 참봉(參奉)에 특천되었고,차남자유(子游)는학행으로 장사랑천문습독(將仕郞天文習讀)에 제 수되었으며, 삼남 자고(子皐)는 천리(踐 履)가 위실(爲實)하였기에 대신(大臣)의 천(薦)으로 선무랑천문습독(宣務郞天文 習讀)에 특제(特除)되었다. 이후 후손들 은소과와대과에급제자를배출하면서지 역의 명문가로 거듭 태어났고, 이들 삼형 제를중심으로크게번성하여호남지방토 호세족으로불린다. 참봉공(參奉公,휘자회)의장남붕(鵬) 은 1495년(연산1) 생진양시(生進兩試)에 올라 약관에명성이높았고,1504년(연산1 0)증광시 을과 제6인(전체 33명중 9등)으 로등제하여성균관전적으로제수되고이 어 한림대교(翰林待敎), 봉교제학겸춘추 관기주관등을역임했는데천성이순결강 직하여 권문(權門)에 예거(曳 괆 )하지를 않았고조정이안정되지않기때문에벼슬 길을수치스럽게여겨향리로돌아와초연 히 지내다 눌재 박상(忠州人), 정랑 윤지 화의 권기(勸起)로 외직에 나아가 선정이 있어치성(治聲)이있었고,이어임지에서 졸(卒)하니 평소 학문이 고명하고 지조가 견고했으며 출처(出處)가 정대(正大)하 였기에 부음을 들은 사림이 모두 통분(痛 憤)하였다. 그의 손자 대흡(大洽)의 號는 백암(白 菴)으로 임진왜란에 從祖인 회재선생이 의병을일으킬때의병도청종사관(義兵都 廳從事官)으로 회재선생의 명을 받들어 의병을 모집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을 드나 들면서 국가의 위기를 설명하여 출전하도 록 하였다.병력 수천과 군량 수 천석을 권 율, 김천일, 고경명 장군의 막하에 지원함 으로서 승리할 수 있 공의 우국충정에 감 탄하였다. 참봉공(參奉公,휘자회)의 차남 곤(鯤) 은 1495년 생원시, 1502년 문과 병과 제18 인으로형에이어등제하여내직으로는성 균관사예와대각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고부군수,보성군수등을역임하면서치적 이많아그고을사람들이송덕비를세웠으 며, 三男을 두었으니 장남 광정(光鼎)은 생원, 차남 광종(光鍾)은 통사랑, 삼남 광 옥(光玉)은 유학자로서 세인(世人)들은 회재 선생(懷齋先生)이라 부르고 벽진서 원에배향하였다. 10세 때 정황(丁潢)의 문하에 들어가 15 46년(명종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광 주 선도면(船道面)에 집을 지어 개산송당 (蓋山松堂)이라 이름하고 문하생들과 함 께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또 향약을 실시 하고 기대승(奇大升), 박순(朴淳), 이이 (李珥),노사신(盧思愼)등과 교유하였다. 1568년 목사 유경심(柳景深)을 도와 광주 향교를 중수하고 학헌(學憲), 학규(學規) 를 제정하였다. 1568년(선조1)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 었으며 157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 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가 되었다. 운 봉현감(雲峰縣監)이 되 었을 때 황산대첩 비(荒山大捷碑)를 세웠고,1578년 전라도, 충청도의 도사(都事)를 거쳐 1579년 예조 정랑(禮曹正郞), 1580년 지평(知平)이 되 었으며, 그 뒤 성균관 직강(直講), 영광군 수,밀양부사를역임하였는데영광과밀양 에송덕비(頌德碑)가세워졌다.뒤에광주 전주의 교수와 사예(司藝), 사첨시정(司 瞻侍正), 봉상시정(奉常侍正) 등에 재직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고경 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등과함께의 병을일으켰으며고향의의병도청(義兵都 廳)에서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하였 다. 당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무능을 탄핵하였으며 새로 감사에 부임한 권율 (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활 동의공로로다시관직에올라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돌아가셨다. 한편벽진서원에배향된회재선생의제 향에는 희진 종친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 하고 경국, 상우 현종이 아헌과 종헌을 맡 았으며정채현종이독축하였다.벽진서원 은 춘향제례는 지역 유림주관, 추향은 종 중주관으로봉행한다. 음성박씨정승공파추향봉행 입향조(휘계양)이하풍암동묘원과벽진서원에서선조의음덕기려 풍암 동 묘 원 제향광경 벽진서원제향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오른쪽에서부터상우종헌관 성련집례,경국아헌관,희진 초헌관,정채축관 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