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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7월31일 수요일 2 (제211호) 종 합 케이시시정공(주)구로시대가열렸다.이는단순한본사사 옥 이전이 아닌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만드는 것으로 유공압기 기전문생산업체의강소기업으로서의그면모를드러내는것 이기에그의미가크다. 지난 7월3일 가진 이전 기념식은 300여분의 귀한 발걸음이 이어진 가운데 박덕규 대표이사는 환영사를 통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하고 더욱 고 품질의제품개발을위해사옥을이전하게되었다고말하고새 로운시작을맞이해초심을잃지않고고품질의제품을시장에 공급하기위해최선을다하겠다며초심을잃지않는초지일관 을 약속하고 이를 지지해 준 덕분에 오늘 행사를 맞이할 수 있 었고,여기에는케이시시임직원여러분과고객사의노력이있 었던덕분이라며거듭감사의인사로환영사에대신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국내 최고의 족보전문업체(대보사)로 성 장시켜온 백형 박도규 대표가 직접 찾아 동생 박덕규 대표와 박신규부사장을격려하면서남다른우애를드러낸가운데이 광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서울지역본부장, 김기원 한국산 업단지경영자연합회(KIBA)명예회장,임재환중소기업융합 서울연합회장이 축사를 통해 케이시시정공의 기술력에 무한 한신뢰와축하의인사를전했다. 금번 이전한 케이시시정공(주)의 신사옥은 쾌적한 근무 환 경 및 직원 편의를 위한 부대시설 또한 마련되었고,고객 분들 이 본사 방문 시 손쉽게 제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내부에 쇼룸 도깔끔하게조성되었다. 금번 케이시시정공(주) 본사 이전 기념식에는 박덕규 대표 와박신규부사장이배워온가학(家學)이드러난듯하다.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공조판서에 승진하여 집현전 제학을 겸임하고이어서이조판서에오르는등당대의대학자로성삼 문, 하위지 등 젊은 학자들의 스승이자 롤 모델이었던 문민공 박중림선생과그의아들취금헌박팽년선생으로이어지는곧 은심성과맑은정신이케이시시정공(주)을뒷받침해주듯이 날 기념식에 많은 분들이 보내준 감사한 정성이 담긴 쌀은 지 난 9일 구로구청에서 사랑의 이웃돕기 백미 전달식으로 이어 졌다. 사랑의 이웃돕기 백미 전달식은 이전식 참여자분들의 정성 과 성원이 모여 백미 2,868㎏에 달하는 커다란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박덕규 대표는 앞으로도 케이시시정공(주)은 끊임없는 기 술 개발 뿐만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주위의 이웃들 또한 둘러보며 많은 분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여러 사회 환원 활동을이어나갈수있도록노력할것이라고전했다. 자동화 기술의 집합체인 유공압 부품을 생산하는 케이시시 정공(주)은1992년설립된이후오직한길만걷고있는유공압 부품전문제조기업이다.공압실린더생산을시작으로유압실 린더, 공압밸 브, FRL, 진 공유니트, 피 팅, 튜브 등 공압 전반의 제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 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생산공정 자 동화와 경영혁신은 물 론이고 클린룸을 구축 하여 최고의 제품을 만 들기 위한 생산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고객 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지속적으 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기존 제품성능을 업그 레이드하는 등 R&D에 도투자를아끼지않고있다.끊임없는설비투자로첨단설비를 보유하고고도의숙련된인력을이용하여완벽한제품을동일 한 수준으로 꾸준하게 생산하는 것이 케이시시정공(주)의 경 쟁력이다. 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 최상의 제품, 최상의납기,최상의서비스를제공하기위해온노력을기울이 겠다는경영진의각오는소비자의신뢰로이어지는듯하다. 케이시시정공(주) 주력제품인 공압실린더, 유압실린더, 공 압밸브,FRL,그리퍼등의 우수성은 세계최고를자랑할만 하 다. 2013년 산업포장 수여 그리고 지난해 6월 27일 서울지방 중 소벤처기업청 이병권 청장및 관계자들이 케이시시정공을 글 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하여 케이시시 군포공장을 방문 박덕 규 대표와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에 앞서 케이시시정공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3년 글로벌 강소기업 1000+ 프로젝트’를통해글로벌강소기업으로선정되며차별화된기 술력을 인정받은 바 있어 양측 관계자들은 생산 공정 시찰 및 현장에서다양한주제에대한간담회를진행한것이다. 이날간담회에서국내부품산업및기초산업의국산화가국 가경쟁력에미치는영향에대한공감대가형성되었으며박덕 규 대표는 “국내 부품산업의 국산화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 는 중요한 문제라며 자사는 국내 유공압 및 자동화 부품 국산 화를위해끊임없는기술개발노력을아끼지않고있다. 금년5월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에해외법인을설립하여본 격적으로해외시장을공략하기위한거점을마련,유공압자동 화부품의시장의글로벌기업을목표로나아가고있다. 케이시시정공은 2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서울 본사와 군포 공장,대구공장,우즈베키스탄지사등을운영하는중견기업으 로자리매김하고품질과기술력향상에집중하며국내는물론 일본중국태국등아시아시장을넘어세계시장에기술력을2 5개국에수출하는기업으로성장했다. 박 대표의 역정(歷程)은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점철되었다 할것이다. 박 대표는 기계공학을 전공, 1977년 당시 재계 5위였던 대 성산업의 공채로 합격했다. 신 입사원 박덕규에게 떨어진 첫 업무는 보수와 공사발주 등을 담당하는 공무과 임무였다. 하 지만 첫 보직은 시작에 불과 할 뿐, 당시는 무섭게 산업발전이 이뤄지던 1970년대 후반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그 의보직은돌고돌았다. 자재관리를 지나 연구소 업무에 이르더니,2개월 동안의 일 본연수에다녀오라는명이떨어졌다.처음에는5주동안유압 (油壓) 관련 교육을 받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함께 갔던 동료 와달리3주더교육을받게되었는데그게바로공압(空壓)관 련교육이었다.읽기는하지만의사소통마저자유롭지못했던 일본어실력으로당시최신기술인공압분야교육을받는것은 무리일수밖없었다.기계사업부의책임자였던김위수부장의 지지를얻고떠나온일본현지교육이었으니부담감은이루말 할수없었다.게다가국가연구자금까지받고왔으니애국심도 발동했다.그럼에도당시교육을감당하기에는역부족일수밖 에없었다.의사소통의한계도그렇지만국내에는제대로소개 된적이없던전문분야가공압기술.그러니이방인에게는가혹 하리만큼어려운분야였다. 더욱이 일본산업의 최고 번성기였던 1980년대 초반,체계가 없는 교육과정에서 일본인 기술자들에게 알음알음 묻고 배워 야 하는 과정자체가 무리였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바쁘다는 핑계로 반나절은 지나야 답변이 돌아오는 둥 마는 둥. 일본인 기술자들은대놓고말하진않았지만,미개한한국에서온일개 사원급교육대상자는그들에게그저괄시와천대의대상일뿐 이었다.하루2~3시간도못자고교육을따라잡으려했지만역 부족일수밖에없었다.첫주는어찌어찌해서테스트를통과했 지만, 2주차부턴 낙제였다. “자존심도 상하고 한국에 돌아갈 면목도 없었죠.헌데 나중에 김위수 전무님께 들어보니,그 테 스트를 2주 후부터 통과한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하시더군 요. 그런데 5주차 교육을 마치자마자 이번엔 4주간 공압 관련 기술을배워야한다니정말난감했어요.버려진짐짝마냥그저 우두커니있다가3주가가버린겁니다.”당시교육과정을떠올 리며 타지에서 신입사원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서러운 일이었 다.다만언젠가일본인들의이멸시와천대를잊지않고,유·공 압기기분야에스스로눈을뜨고반드시배워보겠다는열망은 더강렬해졌다. 그런바람덕분이었을까.전화위복의기회는생각보다빨리 찾아왔다.“막상귀국했더니교육받은바로그회사제품을수 입판매 하라는 업무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맡겨진 업무가 해 당 일본기업에게 수입을 의뢰하고 엔지니어링을 익혀서 영업 을 하는 업무였으니까, ‘옳다구나!’ 싶었다.” 해당 일본기업은 타코(TACO)사. 일본 내에서 유·공압 실린더를 비롯한 관련부품 생산으로 꽤이름이나있는전문기업이었다.그렇게2년동안업무를진 행하면서 유·공압기기 분야에 대한 기술 이해는 물론,언젠가 있을 두 번째 현지교육을 대비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1982년 일본으로 날아간 그는 벼르고 별렀던 배움의 전술을 펼쳤다. 과거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거부하고, 준 비해간질문에답변을해달라고딱부러지게요청했다.2년전 의 첫 교육 당시 설움을 받으면서 접했던 전문서적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타코사의오가와토키아키(이하오가와)회장의눈에띈 계기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유·공압 기술을 유학한 오가 와 회장은 최고의 기술전문가였고, 특히 뭔가 하나라도 더 배 우려는그를보며자사의제품을맡겨도좋을믿음직한기술영 업인재로인식했던것이다.“사실첫번째일본연수교육에서 돌아올 때도 타코사의 전무 쿠츠미 뗎이치(久津見舜一)가 지 은책한권을사인하여나에게보내주셨어요아주잘만든책 이었죠.그같은전문서적에서추려놓은질문을연수기간일주 일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답을 구했어요. 덕분에 전보다 훨씬 발전된 교육이 이뤄졌죠. 그게 계기가 되어 오가와 회장 과는 고인이 될 때까지 오래도록 인연이 이어졌어요. 기술 국 산화를 이루고 품질이 보증된 군포공장에서 2007년부터 저희 제품을수입해간일본기업도바로타코사였죠.당시에교육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잘 통하기 시작하니, 그 인연으로 저에게 설계와기술 담당자를한국으로보내줘서지도해주고자사제 품을 수입해서 팔아보라는 제의까지 하게 된 겁니다.”라고 당 시를떠올린다.대성산업입사후14년7개월만의일이었다.그 리고 1992년 1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창업했습니다.서울 시흥에서 지금의 케이시시정공의 전신인 가나시스템을 세우 고,오래도록품어왔던기술국산화에대한첫걸음을떼었다. 박 대표의 18대조 사육신 박팽년 선생은 집현전 학자이다. 더 나아가 박팽년 선생의 아버지 문민공(휘 仲林)은 성삼문, 하위지등집현전학자를길러낸스승으로이들이한글창제에 공헌함으로서지금우리가사용하는한글이태어난것이다. 이에박대표는집현전학자였던선조의유훈을항상가슴에 품고 살면서 한글세계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2020년 1 1월 30일 (사)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방문 사재 1억원 을 선뜻 내놓았다. 그리고 매년 4,000만원을 후원하는 업무협 약을진행하고있다.이단체는인도네시아의바우바우시와남 부톤군 지역에 까르아바루 초등학교, 바우바우 제2고등학교, 사뽀라와제1중학교등8개교약550여명의인간극장에출연한 바있는현지파견교사정덕영선생님이학생에게한글교육을 실시하며한글을보급하고있다. 박덕규 대표는 족보문집 전 문업체를 창업 대한민국 최고 의 업체로 성장한 ‘대보사’ 창 업주고(故)박노택회장의3남 1녀중차남으로대구에서태어 났다. 사육신의 한분이신 충정 공 박팽년 선생의 18대손으로 유학을숭상하고소학(小學)을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도덕 실 천을 생활화 할 것을 아버지로 부터배우며몸소실천해왔다. 부친인 고(故) 박노택 회장 은 아들 삼형제중 박 대표에 대 한걱정이제일컸다.너무순하 고원래원칙을강조해‘험한세 상을어떻게헤쳐나갈지’걱정속에지켜볼수밖에없었단다. 박도규대보사대표는문중에서무슨사업을한다든지어려 운일에도형의말에한번도거역하지않은동생을보면서‘나 는참복받은사람이다.’라고생각한단다. 특히 형 도규(현 대보사 대표),동생 신규 현종은 현재 케이 시시정공(주)부사장으로박대표를지근거리에서돕고있다. 1997년11월 1일IMF가 몰아닥쳤다.박대표또한위기가찾 아왔다.은행이자가25~35%까지치솟았고이런이자에도은행 에빌리겠다고했지만은행에서빌려주기를거절하였다.박대 표가 기댈 곳은 가업을 이은 형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실하 게살아온박대표의인생을믿어준형수님은든든한조력자이 자후원자가되어어려운위기를함께해쳐나갔다. 이들 삼형제의 우애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부럽다는 말까 지 한다. 충정공을 비롯 선조 현창사업에 아끼지 않고 투자하 는삼형제의위선사업은헤아릴수없을만큼많다.각종책자 발간과종친회각종행사에빠지지않는열정에모두가찬사를 보낸다. ▶위기사중일부는지난2021년1월호,제169호에소 개한바있습니다. 케이시시정공(주)본사사옥 이전븣븮제2의도약븯주춧돌 놓아 위선사업에 매진할수록 더 큰 음덕으로 돌아와븣사육신 박팽년 선생 후예 기 업 본사사옥이전기념식에서참석한내외빈이테이프컷팅을하고있다.왼쪽에서네번째박덕규대표다섯번째박신규부사장,아홉 번째박도규대보사대표 쾌적한사무실과개인라커룸,카페테리아는최고의품질로이어질것같다. 고객들이손쉽게제품을확인할수있도록내부에쇼룸도깔끔 하게조성했다. 기념식에보내준정성,이웃위한기부로이어져 박덕규대표(左)가구로구청을찾아백미를전달하고있다. 유공압븡자동화부품시장글로벌선두기업으로 공압솔레노이드밸브 공압실린더 유압실린더 에어클린유니트 지난5월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에지사를설립했다. 박덕규대표의인생역정(人生歷程) 고객에게받은사랑사회환원으로갚아 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_한글학교준공식에 참석 준공테이프 컷팅을 하고 있는박덕규대표(오른쪽에서일곱번째) 삼형제우애는선조를위한위선사업으로 선조충정공박팽년선생을현창하 기위한책자발행에도아끼지않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