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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여 는 글 전문가가 바라본 글로벌 핵심 이슈와 시사점 w w w . f r e e p . c o m 아야 소피아의 역사적 기원 및 그 의미 터키 이스탄불의 유서 깊은 성소피아 성당이 모 스크로 환원되면서 2020년 7월 24일 이 장소에 서 역사적인 이슬람 예배가 거행되었다. 이 건물 은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6세 기에 건축되었고, 8세기 이후에는 그리스정교회 의 총본산이었다. 이성당은 1,000년 동안 세계에 서 가장 큰 교회이자 당시 기독교 세계의 중심 교 회였다. 그런데, 1453년, 오토만 술탄메흐메드 2 세가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이건물 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했다. 이후 이 모스크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 터키 공화국을 세운 케말아 타튀르크가 세속주의를 표방하면서, 1934년 아 야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변모시켰다. 그가 이슬 람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졌던 조 치였다. 이슬람 모스크로 복원하고 기념 예배 참여 외부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터키 고등법원 은 아야 소피아가 80년 전에 불법적으로 박물관 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2020년 7월 10일에 판결 했다. 법원은 이 건물이 모스크로 전환되기를 오 랫동안 갈망하던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주 의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같은 날 터키 국무 회의는 1934년까지 모스크로 사용되던 아야 소 피아의 지위를 박물관으로 변경한 아타튀르크의 행정명령을 취소하였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 안 대통령이 모스크 전환 법령에 정식 서명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야 소피 아는 이제 ‘대(大) 아야 소피아 모스크’로 개칭되 었다. 이슬람 모스크로의 전환 이유 그렇다면 아르도안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 을까? 터키 정치는 약 20년 동안 위기에 처해있 으며, 코로나 19로 인해 터키의 경제적 상황도 매 우 나빠져 있다. 경제 침체 속에서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대통령이 보수적 인 이슬람 단체의 지원 기반을 공 고히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에서의 군 사적 개입과 동 지중해 연안의 석 유 및 가스 권리에 대한 국제 분쟁 이 격화된 가운데, 터키가 세계 무 대에서 고립될 가능성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번 결정은 터키에서 이슬람의 위 상을 높이고 터키를 이슬람 세계의 주도 국가로 만들기 위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야망과 겹친다. 그리스의 강력한 반발 그리스와 미국의 ‘그리스정교 교회’의 지도자들 은 이번 결정을 보고 이날을 ‘애도의날’로 공표했 다. 그리스 정부는 터키의 결정이 문명사회에 대 한 중대한 도발이며 양국 관계는 수렁에 빠질 것 임을 분명히 했다. 서방의 기독교 교회의 반발과 우려 터키 법원의 결정 이후로 서방의 기독교 교회 지 도자들도 이를 비판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을 포함한 일부 기독교 종교 지도자들과 미국도 터키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즉 아야 소피 아라는 역사적인 기념비가 학대를 받았다는 식 으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터키는 과거 역 사적인 6개의 그리스정교 교회(동방교회)를 이 슬람 모스크로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민족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불관용과 이데올로기에 갇힌 행위로 보고 있다. 그리스를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반발에 터키 당국 은 아야 모스크가 모든 방문객에 공개되고 예술 로서 이 공간이 보호받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력 히 천명하고 있다. 앞으로 예배 이외의 시간에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야 소피아는 무료로 공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야 소피아의 역사적 기원 및 그 의미 정세진 | 한양대 아태지역 연구센터 부교수 COPYRIGHT © 2020 대외경제정책연구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