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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동지 한영섭군이 사인을 애통하노라면 "그대는 죽었지만 그대의 주의정신은 동지인 우리들에게 계승되어 분투할 것이니 고이고이 진좌하라"라고 쓴 조기 40매를 높이 들고 혁명가를 고창하노라. "차듸찬 흰빛 밑에 눌린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 뿌린 동지였다"라는 비를 건립하니 일제는 비문의 문구가 불온하다 하여 보안법위반으로 투옥되어 귀가치 못하니 사랑하는 당신이여 잊을 수 없는 당신이여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귀한 육신 흙이 되고 진토 되었는지 우리들에게 부디 알려다오! 일제의 칼날밑에 조육이나 어육됨이 아 분함이 못내 참으리!
당신 눈이 해가 되어 여기저기 비추우고 우리나라 밝아지고
당신 피가 꽃이 되어 여기저기 피고지고 우리나라 고아지네
당신 숨결 바람 되어 여기저기 불고지고 우리나라 깨끗하리라
당신이 계신 곳 아무도 아는 이 없어 우리 모두 님을 부르며 통곡하다 지쳐 주저앉았노라.
공은 1910년 4월 6일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리 1309번지에 부 김양수와 모 고안심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여 동지 애도비건립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32년 3월 14일 경상북도 대구시 입정 82~1번지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일경은 선열님의 사망 사실을 은폐하려다가 다른 동지 5명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이미 1931년 12월 8일에 있었고 그 판결문에 관련 사실도 적기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보면 그의 사망 일자는 1931년 8월 5일 이후 12월 8일 이전의 어느 날인데 일제 법원이 그의 옥중 사망 사실을 뒤늦게야 공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애국충정을 기리어 199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