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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정인승 박사 - 애국지사.한글학자 건재 정인승 1897~1986 본관은 동래, 호는 건재. 정인승 선생은 일제가 우리의 얼, 말, 글을 말살함으로써 우리를 뿌리없는 겨레로 만들려고 하자 이에 맞서서 겨레의 얼, 말, 글을 지키고 가꾸기 위하여 일생을 고스란히 불사른 애국지사이자 한글학자이다. '말과 글을 잃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 정인승(鄭寅承, 1897.5.19~1986.7.7) 선생은 대한제국이 성립되던 해인 1897년에 장수군 계북면에서 태어났다. 건재 선생은 향리에서 한학자 한응수에게 한문을 익혔으며 이후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학업을 계속했다.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에서 연정학원과 중동학교를 거쳐 내자동에 있는 종교예배당 영어 강습소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 무렵 일제의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수탈은 더욱 가혹해 졌고, 특히 문화말살 정책을 펴면서 억압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이에 건재 선생은 일제의 이러한 문화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 문화의 파멸을 막는 방법은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을 지키고 연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한글 연구에 진력하였다. 1925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건재 선생은 같은 해 4월부터 전북 곷ㅇ 고등보통학교의 교사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방해로 인해 한글 교육을 못하게 되자 1935년 사직했다. 1936년부터 조선어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큰사전」 편집주간을 맡았던 건재 선생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풀려난 건재 선생은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사업을 계승하여 진행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전6권) 편찬을 1957년 10월까지 주재하여 완간함으로써 민족적 대사업을 완수하였다. 이후 건재 선생은 전북대학교, 중앙대학교, 건국대학교에서 한글 연구와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정부에서는 건재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