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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호 (당시21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9년 6월 16일 전북 부안군 출생 1989년 인천 기계공고 졸업 1989년 3월 성남 대유공전 건축과 입학 노래패‘어울림’가입, 활동 1990년 5월 19일 ‘광주 성지 순례와 전대협 제4기 출범식’참가를 위해 광주로 가던 중 장성에서 검문을 피하다 열차에서 추락하여 운명 |39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9년 건축가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성남 대유공전 건축과에 입 학하였다. 대학에 들어간 동지는 민중가요 노래패‘어울림’에서 민중가요 속에 담긴 삶을 알아가고 자신의 삶과 민중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90년 5월 18일 제4기 전대협 출범식에 참가하기 위해 약 30여명의 대유공전 전문대학 학우들은 출정식을 가지고 여러 차례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19일 아 침 전북 익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을 저지하기 위한 경찰의 검문검색이 심하여 수많은 학생들이 연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동지를 비롯한 세 사람은 검 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광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일단 열차 편으로 장성까지 가 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광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하였다. 오후 1시경 열차가 장성 역에 도착하자 출구를 향하여 가던 중 전경 4~5명이 개찰구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열차가 장성역을 조금 지나면 뛰어내려 역 담을 빠져나가기로 결의한 후 동 열차에 재 탑승하였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여 50~60m에 이르렀을 때에 맨 먼저 임종훈 군이 뛰어내리고 연이어서 신장호, 장민주 군이 뛰어내렸다. 장민 주 군과 임종훈 군은 곧바로 일어났으나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지를 보 고서 두 사람이 급하게 다가가서 보니 동지는 정신을 완전히 잃고 왼쪽 귀와 입에 서 계속적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선로보수작업을 하고 있던 철 로 노무원이 목격하고서 동지를 광주기독병원으로후송하였다. 기독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후 오후 5시 10분경 전남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소생작업을 실시하였으나 끝내 소생치 못하고“내나라 내 땅에서 죄지은 것도 없 이 검문까지 당하면서 피해 다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던 동지는 저녁 7시 경 운명하고 말았다. 끝내살리라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