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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방어선 최대 격전지 함안
6.25전쟁 초기 병력과 화력에서 열세였던 국군과 미군은 후퇴하면서 방어선을 설정하여 적의 남하를 방해하는 지연전을 펼치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대응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북한군 제6사단은 금강지역을 방어하던 미 제24사단을 우회, 신속히 호남으로 진격하여 7월말 경에는 부산에서 불과 60km거리에 위치한 함안지역을 향하고 있었다. 함안은 예로부터 낙동강 서쪽과 경상도 해산 및 마산과 부산등 사방으로 연결된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북한군이 마산-부산을 점령하기 위해서, 아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양측 모두 중요한 지역이었다. 1950년 8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남강을 따라 배치된 방어선 및 십이당산에서 여항산, 필봉, 서북산, 야반산, 옥녀봉을 잇는 능선까지 미 제25사단및 경찰부대가 함안을 지키기위해 북한군 제6사단, 제7사단과 함안 곳곳에서 공방전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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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제6사단및 제7사단이 1950년 8월 31ㅇㄹ 야간 기습으로 당시 함안군 소재지인 함안면을 점령하고 칠원및 창원 중리 부근까지 침투하는 등 총공세를 전개하면서 아군은 일시적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곧 미군의 공중폭격및 포병의 화력지원, 예비병력 미 제25사단 제27연대의 투입으로 위기를 수습하였으며, 경찰부대는 같은 날 송도나루터 부근 대산지구전투에서 미군 포함 약 90여명의 병력으로, 1,000여명의 북한군 제7사단의 남강도하를 저지하는 활약을 펼쳤다. 함안 군민들도 전투 기간 동안 의용병으로 참전하거나 아군의 탄약및 식량 수송을 지원하는 등 조국수호에 앞장섰다. 그 결과 북한군의 함안및 마산방면 진격을 지지할 수 있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을 위시한 아군의 총반격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기간동안 상회간 폭격및 포격등으로 많은 함안 군민들의 희생이 발생했고 토지가 황폐화되는 등의 비극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