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page


194page

고 휘 필주는 묘재 북방 후록 신좌하고 표질효우 의용경개하며 언의강직하여 인개경복이라. 고는 휘 악수 자 성규요. 비는 안동권씨 응성 녀라. 묘재 우임 좌합폄이요. 자 대근은 자 인선이며 시거마동하다. 배는 밀양박씨 준호 녀라. 묘재 조고위 묘하 임좌며 합폄이라. 녀 곽주석 현풍인으로 자 상열 재열을 두었고 장손 환기는 진주향교 장의 역임 가계 부흥에 유공하였고 배는 순흥안씨 원중 녀라. 묘재 하단 합폄이요. 질에 창근 재근 명근이라. 공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시부터 학문과 무술을 연마하며 충의지서를 즐겨 탐독하여 일찍이 문무를 겸한 학자로 재기초범하고 개유지절하여 충신보국의 굳은 신념으로 갑오 을미의 국운을 감지하여 의병과 우국인사를 모집 1896년 1월 진양의 향교에 통문을 보내 서재기 안낙진 등과 거의를 준비하던 중 안의에서 일어난 노응규 의진에 합류 참모에 선임되어 진주성을 공략 함락시키고 관찰부를 처단하였으며 창의소를 두어 관장하면서 일군의 수비대를 습격하고 부산 일인 거류역의 탈환을 계획하는 등 거센 활약을 하다가 일군의 반격으로 진주성이 함락될 때 42세를 일기로 전사 순국하였으니 오호 통재라. 당시 촉석루에서 유명한 순의시를 남겼으니 與君登且楼不惜隕殘軀最是千秋恨其何國母讎(여군등차루부석원잔구최시천추한기하국모수)라 하였고 공의 아우 휘 경우 자 경진 호 강비공 묘재 방하산 임좌의 유언으로 공의 장손 환기의 노력과 후손 환범 환석 환진 등의 포상 상신으로 나라에서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익년 공의 공훈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국가유공자증을 서수하였다. 증손 재형은 고위의 유훈에 따라 숙부 환주와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