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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0년 경남 진주에서 한문교사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1913년에는 경남일보 주필로 계몽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4월 2일부터 6월 20일경까지 함양군 지곡면 정치리에서 유생 박재룡(朴在龍)과 같이 조선독립선언서·독립충고문·조선독립가·조선독립경포서·조선독립책선문(朝鮮獨立責善文)등을 제작하여 진주에 거주하는 강대익(姜大翼)과 김형권(金亨權)에게 의뢰하여 각각 20여부씩을 배포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19년 8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았으며, 동년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에 서당을 설치하고 후진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