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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전씨(慶山全氏) 시조(始祖) 휘 영렬(諱 永齡의 二十四세손 고 휘열상 자 민진(考諱烈相字玟珍) 비 파평 윤삼립(妣波平尹三立)의 장자 무진 일명 무영(長子武瑨一名武永)이다. 위로 누이 석림 란이 미자가 있으나 무후한 관계로 종형 휘용석의 자(子) 윤준이를 입계하였다.
무릇 민족의 역사있는 곳에 민족의 전기 끊임없이 흐르니 이 나라의 역사와 함께 정의의 발현은 연연부절하였다. 단기 四二九三년 三월 十五일 부정선거에서 이승만정권은 그들 독재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부정과 불법이 극도에 이르렀다.
주권을 빼앗긴 국민은 입이 있으나 말을 못하는 판에 참다못한 우리 청년학도들은 쌓였던 분노를 이 나라 이 땅에 폭발시켰으니 전무영군은 그때 민주주의의 선봉에 섰다가 독재의 총탄에 쓰러진 젊은 꽃이다.
군은 우수한 성적으로 타학생의 모범이 되었을뿐 아니라 부모에게 효도하여 오던 오늘에 이르러 여기 이 무덤에 고히 잠들게 되었으니 이는 훈풍에 꽃잎 화사하게 피는 四월에 이 땅과 겨레를 위하여 바친 정의의 기수요 영웅적 화신이 된 학생이다.
순결로 가꾼 조국강산에 바야흐로 새 자유가 꽃피는 오늘에 二十된 꽃다운 넔은 길이 빛나리.
이 묘비는 재경진해유학생회 회원들이 진해시민과 동창선후배의 정성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단기四二九三년 七월 二十五일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