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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당시25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5년 5월 6일 전남 장서군 삼서면 대도리 관동부락에서 태어남 1982년 2월 금호고등학교 졸업 1982년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입학 1984년 조선대학교 민주화 자율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1985년 반외세 반독재투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1985년 11월 14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2년형을 선고받음 1987년 7월 8일 6∙29 조치 이후 가석방. 2학기에 3학년으로 재입학 1988년 2학기「민주조선」편집위원장 1989년 4월 「민주조선」발간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배를 받음 1989년 5월 3일 행방불명 1989년 5월 10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됨 |38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2년 대학에 입학한 뒤 민주화 투쟁을 하였고, ’85년에‘반외세반독재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2년여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형생활을 하 면서 재소자의 인권개선을 위한 투쟁을 하였고,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단식투 쟁에도 참여하였다. ’87년 7월 출소 이후, 전남지역 구속학생동지회 부위원장, 학 원민주쟁취 및 복적추진위원회 교육부장과 총학건준위 교육국원으로 일하면서 구속 학생 석방 및 조선대에서 전개된 학원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또한, ’88년 하 반기부터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으로서「민주조선 창간호」를 발간하는 등 통일 운동과 사상, 표현의 자유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북한 바로알기운동에 적극 참 여하며 교지에‘미제침략 10년사’를 쓰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동지는 ’88년 초 부터 ’89년 사망 전까지 학원 및 사회민주화를 지향하는 호남대 활동가들의 학습 모임을 지도하였다. 동지는 ’89년 5월 3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던 중 광주 제4수원지 삼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친 후 5월 10일 수원지에서 익사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경찰은 동지가 경찰의 눈을 피해 철조망을 넘어 수원지로 들어가 물가를 따라 이동하던 중 청암교 석출다리 하단을 지나다 미끄러져 수원지에 추락, 익사한 것 으로 수사 종결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안기부 정보과장의 ’89년 개인 업무일지 를 입수하였다. 이 자료를 통해 안기부에서 조선대 비운동권 학생들이 이돈명 총 장을 고발하도록 꾸미는 등 진보적인 성향의 이돈명 총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공 작을 진행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89년 4월「민주조선」을 수사한 이유가 이돈 명 총장을 퇴진시키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지를 검문한 북부경찰서 수사과 경찰관들 외에 제3의 공안기관에서 검문 도중 도망친 사실을 알고 동지를 찾기위해 수색활동을 벌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당일 제3의 공안기관에서 동지를 미행 또는 감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끝내살리라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