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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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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해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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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해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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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방 후 김 의사는 1950년 5·10선거에서 경북 안동 갑구에서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일제하 항일투사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김 의사는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다시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 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이 백골단 등을 동원해 각종 테러를 자행하자 김 의사는 동지 유시태(柳時泰)와 함께 이승만을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특히 김 의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죽음이 이승만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믿고 응징할 생각도 같이 갖고 있었다.
1952년 6월 25일, 피난지 부산에서 6·25 기념식 및 북진결의대회가 열렸다. 김 의사와 모의한 유시태는 모자 속에 권총을 숨긴 채 행사장에 들어거 이승만 대통령 저격을 시도하였으나 권총 불발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공범' 김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러던 중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복역 만7년 10개월만인 1960년 4월 28일 석방되었고, 두 달 뒤인 6월 25일 특별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