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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현 (당시22세) 화 장 1967년 8월30일 충남 아산 출생 1980년 온양 천도초등학교 졸업 1983년 아산중학교 졸업 1986년 천안북일고등학교 졸업 1986년 3월 3일 서울교육대학 입학 1988년 3월 윤리과 학생회 학술부장 역임 1988년 10월 동아리연합회 총무부장 역임 1989년 4월 7일 분신 1989년 4월 8일 운명 |38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내기 위한 선생님의 꿈을 안고 서울교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생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의 모순 과 대학교육이 민족자주교육의 산실이 아닌 식민지 노예를 길러내는 곳이 되어 버린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상과 학문연구에 대한 자유는 철저히 말살되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권리와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스스로 편성할 권리를 갖기 위한 의로운 투 쟁도학교 당국과 어용교수들의 탄압으로 좌절되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89년 3월 서울교대는‘기성회비 사용내용 공개, 예∙결산시 학생 대표 참여’ 를 요구하며 학원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 수업거부 투쟁 등이 교수들의 연구실 수업 등으로 부분적 수업거부에 그치게 되었고 이를 안타 깝게 여긴 동지는 4월 7일 오후 7시경, 강의동 3층에서 반미 출정가와‘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고“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미제와 독재의 가슴을 찔러 총”구호를 외치며‘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라 는 혈서로 쓴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동지의 죽음은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제와 군부독재, 식민 지 노예교육의 첨병인 학교 당국과 어용, 무능교수들, 그리고 굴종과 안일의 늪 에 빠져 있던 교대인들의 가슴에 비수로서 꽂혔다. ‘이땅의백성들이자신들의최소생활유지를위한몸짓마저모두빼앗긴채죽어가고있다. 이 한반도에는외국자본에의해더이상자립경제가발붙일곳이없어져가고있다. 민중의아픔, 나의본질적인억압을멀리하려고, 무관심한나의안일이역겹다. 점점민중들그의미도잘모 르지만그들과함께하길꺼려하는나의모습을더이상지켜보고싶지않아서가장못난길을 택하고만다. 갈수밖에없는나약함에서글퍼하면서’ - 유서중에서- 끝내살리라 |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