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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사회각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게 되었다. 선생의 영향으로 기미독립만세운동 때에 덕촌마을에서 다른 마을보다도 앞서 전농민이 일심단결 독립만세를 외쳤기에 왜경에게 많은 동민이 체포되었으며, 유치장에서까지 굴하지 않고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고 한다. 이를 되새기는 삼일절 기념행사가 1970년부터 덕촌교회에서 시작되어 1987년부터는 덕촌청년회가 마을전체행사로 계승발전시켜 민족 정신 고취와 동민 단합의 교육장이 되고 있다. 선생은 그후 블라디보스톡에 망명하여 학교 설립과 한인자제 교육, 독립군 훈련 및 자금모금에 전생애를 바쳐 건국훈장이 추쇠되는 동우리 마을에는 독립운동의 정기가 살아 흐르고 있다. 우리마을에 세워진 덕촌교회는 1909년에 시작되어 현재 오백여명의 신도들이 모이고 있으며, 신앙심을 바탕으로 우리 마을을 발전은 물론 민주화, 민족통일, 농민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농촌교회로 손꼽히고 있다. 덕촌신용협동조합은 교회 새가정회의 어린이 저축을 모체로 1966년에 시작하여 1972년 신협법에 의한 창립총회로 정식 출범하여 현재 조합원 505명 자산 12억원의 건실한 발전을 하였으며, 지역사회발전 등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모범적이고 민주적인 조합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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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소비자협동조합은 1991년 덕촌신협정기총회의 결의로 지역사회개발부를 독립하고 자산을 이관하여 창립하고 저렴한가격의 좋은 생활필수품 공급과 아울러 앞으로 농산물도 농직거래 운동과 가공산업의 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하고있다. 덕촌 어린이집은 1969년 교회 정하유치원으로 시작하여 농번기 탁아소, 새마을 유아원을 거쳐 현재에는 재단법인화하여맞벌이 부부의 탁아와 어린이 조기교육에 기여하고있다. 덕촌낙우회는 1983년에 조직되어 사료와 낙농기 자재 등을 공동구매 하면서 사무실을 설치하고 축산협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다. 단체로서 는 덕촌노인회가 있어 마을의 어른으로서 질서를 세우며 후손들에게 경로효친과 미풍양속을 가리츠고, 덕촌부녀회는 여성들의 생활문화개선과 봉사활동에 앞장서며, 1987년 덕촌청년회가 창립되어 농촌을 지키고 발전시키며 마을의 행사와 궂은 일을 도맡아 봉사하므로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우리 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1989년에는 동민의 헌신적 노력과 찬조부지 희사 및 정부 지원으로 노인정과 마을회관을 건립하여 노인의 휴식처와 마을공동체 조성의 중심이 되고 있다. 우리 덕촌마을의 영농상황은 수도작 위주에서 일찍부터 시설원예, 특수작물재배, 축산 등을 도입하여 다른 마을보다 경제적으로도 향상되었으며, 1974년에는 새마을운동 우수 리동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하사금을 지원받아 단무지 공장을 건립하였는데 마을 기금 조성에 크게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