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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사면되어 귀향한 후 1913년 2월(양)에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총무총장(總務總長)에 임명되어 재정 지원을 약속하였다. 독립의군부는 고종의 밀조(密詔)에 의해 1912년 10월에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전라남북도 순무대장(巡撫大將)에 임명된 임병찬이 그의 아들 응철(應喆)을 서울로 파견하여 전 참판 이인순(李寅淳) 이명상(李明翔) 곽한일(郭漢一) 전용규(全鎔圭)와 국권회복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독립의군부 정의(正意)를 제정하고, 총무 참모 회계 사법 군무(軍務) 등 조직을 구성하였으며, 맹원 모집(盟員募集)과 군자금 조달에 분주하였다. 이 때 곽한일은 이인순(李寅淳)으로부터 김재순(金在珣)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김재순을 대면하게 된 자리에서 그의 여비와 운동자금을 조달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그 조달을 위하여 동지인 전용규·이정로(李鼎魯)와 협의한 후 온양군 일북면 덕지(溫陽郡 一北面 德地)에 사는 윤천보(尹天普)·윤익동(尹翼同)과 평택군 서면 목정리(平澤郡 西面 木井里)에 사는 이일영(李一榮)·윤상보(尹尙普)·강태봉(姜泰逢) 등으로 하여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도록 명했다. 이들은 전라남북도·충청남북도·경기도 등지에서 3백원을 거두어서 3월 하순경에 김재순에게 출급(出給)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경비를 조달할 것을 보장해 주었다. 이것이 세칭 독립의군부사건 혹은 온양사건이라 불리운 운동의 전모이다.